다아낙(Taanach)
에스드렐론 평원 남단, 므깃도에서 남동 방향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나안 사람의 도시로, 이곳에는 당시 중요한 대상로가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 의하여 점령당한 후에는 이스라엘의 레위인 도시가 된 곳이기도 하다(수12:21;대상7:29). 고대의 다아낙은 구릉 지방과 아크레 평원을 연결하는 도로와 갈멜 산을 가로질러 에스드렐론 평원과 샤론 평원을 잇는 도로 등 두 개의 무역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초기 청동기 시대인 B.C.2600년경에 해당되며, 성읍은 B.C.27-26세기에 이미 건설된 듯하다. 다아낙은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후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되었고(수17:11), 후에 레위 도성으로 그핫 자손에게 배정되었다(21:25). 여호수아 12:21의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인들이 다아낙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사기 1:27에서는 므낫세가 가나안인들의 강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그 도시를 완전히 점령할 수는 없었다고 밝힌다. 이 도시는 사사기 5:2-31에 나오는 드보라의 노래의 배경이 되었다. 그 노래의 내용을 보면, 시스라와 바락간의 전투가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벌어졌다고 말한다. 그 결과로 다아낙에 거주하던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부역을 하게 되었다. 다아낙은 다윗과 솔로몬 치하에서 가장 번성했는데, 솔로몬의 통치시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관장 가운데 한 사람인 바아나가 이곳을 다스렸다(왕상4:12). 솔로몬이 이곳 다아낙에 왕실에 조달할 식물을 위해 관장할 관리로 바아나를 둔 것을 보면 이 시대에도 중요한 성읍이었던 것 같다.
다아낫 실로(Taanath Shiloh)
에브라임 지파 경계에 있는 믹므다와 야노아 사이의 변두리 성읍이다(수16:6). 세겜에서 남동쪽으로 약 11.1km 정도에 위치해 있는 '키르베트 타나 엘포카'로, 고대에는 하나의 요새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David)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마1:6),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용모가 준수하였으며 용감하였고, 목동으로서 아버지의 양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무엘에 의하여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다. 한편 사울이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면서 악신이 들려 괴로움을 당하게 되자 다윗은 그를 진정ㅎ시키기 위해 수금타는 자가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엘라 골짜기 전투에서는 블레셋의 장수인 거인 골리앗이 하나니모가 그의 백성을 모독하는 것을 보고 막대기와 다섯 개의 물매 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무찔렀다(삼상17:1-51). 사울은 다윗을 사랑하였으나 다윗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 하였고, 이에 다윗은 사울을 피하게 되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자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간을 머문 후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의 사망으로 열두 지파의 만장일치로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통일 이스라엘 왕 시절에 다윗은 블레셋과 아말렉 등 일곱 민족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율례를 순종하면서 이스라엘을 강력한 국가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성군 다윗도 자신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살해하는 죄를 범했으며, 압살롬과 암논의 자식들로 인해 근심의 세월을 살았다. 다윗의 그러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의 평생에 관심을 보이셨으며, 그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으셨다(왕상8:16). 다윗을 향한 이러한 은총은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선하신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2:33).
다윗성(city of David)
1. 요해로서의 다윗 성. 다윗이 헤브론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된 이후에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빼앗은 성읍을 가리켜 '다윗 성'이라 하였다(삼하5:6-8;대상11:5,7). 이곳의 본래 명칭은 '시온 산성'이었으나 다윗이 점령한 후에는 다윗성이라 불렀다. 그러나 후에는 예루살렘으로 개명되었다. 이곳 다윗 성은 청동기 초기의 요해로서 동, 남, 서 세 방향 모두가 다 30-40m나 되는 깊은 계곡에 돌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북쪽은 얕은 세덱 골짜기가 뒤의 성전 구릉과 연결되어 있었다. 성의 넓이는 5만m2가 넘었으며, 성문에는 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통일왕국 최초의 수도가 된 이곳은 열두 지파 가운데 어느 지파의 소유도 아니었으며, 이스라엘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던 까닭으로 결국 다윗의 통일왕국의 수도로 선택될 수 있었다. 한편 다윗 성에 다윗의 묘실(느3:16)이 있음은 사도행전 2:29의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당시에 성과 성 주위에 물을 공급하여 줄 수 있었던 것은, 몇 개의 주요한 지하수로 덕분이었다. 이 수로들은 기혼 샘으로부터 물을 공급해 주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수로로는 실로암 수로(솔로몬에 의해 건축), 히스기야 수로, 그리고 가장 최초의 것은 '와렌의 수구'(물통을 이용해서 성 위로 끌어올린 물을 동쪽 성벽 안으로 보냈던 수로)가 있다. 이 수로들은 최소한 A.D.1세기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으며, 다윗의 군대가 여부스를 공격할 때 바로 이 수로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삼하5:8).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은 하나님의 궤를 이곳 다윗 성으로 옮겨놓았으며(삼하6:16,16;15:29), 솔로몬은 애굽 왕인 바로의 딸을 이곳에 거하게 하였다(왕상3:1;9:24). 다윗 성에는 유다의 거의 모든 왕들이 장사되었다(왕상2:10;대하21:1).
2. 다윗의 출신지로서의 다윗성. 베들레헴을 일컫는다(눅2:4,11).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양을 치며, 이곳에서 성장하였다. 그리고 또한 이곳에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다(삼상16:1-13). 이와같이 다윗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곳을 다윗 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참조> 베들레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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