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례
성례들은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단련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먼저 성례들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 줄때 우리의 믿음을 단련한다.
주님께서는 고상하고 천상적인 비밀들이 가시적인 물질들을 매체로 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무지한 육을 위해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성례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성례시 우리에게 주어지는 물질들의 본성 안에 어떤 천상적인 특성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이 물질들에게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말씀 안에 포함되어 있는 약속은 언제나 선행하며, 가시적인 표는 이 약속을 확증하고 날인하며 또 이 약속을 우리에게 보다 확실히 해주기 위해 부가된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것이 우리의 불완전한 능력에 적합하다고 보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작고 나약하기 때문에 만일 그것이 모든 측면에서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모든 수단을 통해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 즉시로 크게 뒤흔들리게 되며, 동요하게 되고 나약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성례들은 사람들 앞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단련한다. 즉 우리의 신앙이 공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밖으로 드러나게 될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도록 고무되어질 때 그러하다.
성례란 무엇인가?
성례란 주님께서 우리의 약한 신앙을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당신의 선하신 뜻을 제시해 주시고 또 증거해 주시는 외적인 표이다.
보다 간결하고 분명하게 말하면, 성례란 외적인 표를 통해 공표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언이다. 기독교회는 두가지 성례, 곧 세례와 성찬만을 인정하고 있다.
세례
세례란 첫째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돕고 둘째로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신앙고백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물해 주신 것이다.
신앙은 약속을 바라본다. 이 약속을 통해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제공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옷 입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모든 재화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세례는 특히 두 가지를 상징해준다 :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얻는 죄씻음이다. 둘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얻은 육의 제어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선민들에게 죄사함을 얻기 위해 세례를 받으라고 명하셨다. 또한 바울은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부된 교회를 생명의 말씀을 통해 거룩하게 하시며 물의 씻음(=물세례)을 통해 정결하게 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나아가서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아 그 분의 죽음 안에서 장사된 것은 새 생명 가운데에서 행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물이 죄씻음과 중생의 원인이나 방편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러한 은사들에 대한 인식이 성례(=세례) 안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표현해 주는 것 뿐이다. 이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주어진다고 믿는 바 그것을 우리가 실제로 받으며, 얻으며, 취득함을 뜻한다.
우리가 이 은사들을 처음 알게되건 혹은 우리가 이전에 이미 인식했던 그 은사들을 이제 보다 확실하게 하든 세례는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행하는 신앙고백에 유익하다. 왜냐하면 세례란 우리가 동일한 종교 안에서 모든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 속에 편입되어 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표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맺으시는 계약은 무엇보다도 세례를 통해 이루어 지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로써 그들은 영원한 계약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 계약을 통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성찬
성찬의 신비에 부가되어 있는 약속은 그것이 무엇 때문에 제정되었으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명백히 말해주고 있다.
즉 이 신비는 주님의 몸이 우리를 위해 단번에 주어졌으므로 그것은 이제 우리의 소유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소유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실히 해준다. 또한 이 신비는 주님의 피가 우리를 위해 단번에 뿌려졌으므로 그것이 언제나 우리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이 신비의 가시적 표는 빵과 술(=포도주)인데 주님께서는 이 두 표들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에의 참된 교제를 제공하신다.
그러나 이 교제는 영적인 것으로써 이를 위해서는 성령님의 메는 띠만으로 충분하다. 즉 이 교제는 그것이 빵의 형체 안에서의 육의 현존이든 혹은 포도주의 형체 안에서의 피의 현존이든 그 어떤 제한된 물적 현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록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리움을 받아 우리가 순례자로서 거하고 있는 이 땅을 떠나시긴 했다 하더라도, 이 장소의 격리가 주님의 능력을 해체시켜 당신의 백성들을 친히 양육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주님께서는 아주 확실하고도 명백한 교훈을 해주고 계시므로 우리는 성찬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풍성함을 지니시고 마치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그분을 보며 우리의 손으로 그분을 만지는 것과 같은 정도로 분명히 우리 안에 현존하심을 확신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현존의 능력과 효력은 매우 크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을 통해 단지 영생에 대한 확신만을 우리의 영혼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의 불멸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도록 만들어 주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은 주님의 불멸의 육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빵과 포도주의 형체로써 주어진 것은 그것들이 단지 우리의 소유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과 양식이 됨을 우리로 깨달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축성된 빵을 볼 때 우리는 즉시 이 유비를 생각해야 한다.
즉 빵이 우리의 육적 생명을 지탱하고 유지해 주듯이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양식이요 보호책이라고! 그리고 포도주가 우리의 육에 가져다 주는 동일한 혜택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부터 영적으로 받는다고!
이 성찬의 신비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대하심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르쳐줌과 동시에 그렇게도 명백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배은망덕하지 말고 마땅한 찬미를 통하여 그분을 기리며 감사의 행위를 통해 이 성찬을 시행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한다.
나아가 이 성찬의 신비는 한 몸의 지체들이 상호 연결되어 하나로 결합되어지는 것과 똑같은 일체감을 가지고 우리가 서로를 열렬히 포용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 당신의 모범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도록 권면하시고,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심으로 만인을 당신 자신 안에서 하나로 만드신 이 경우보다 우리의 상호 사랑을 더 강하고 더 짜릿하게 불러 일으키고 격려해 주는 자극제가 우리에게 주어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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