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ODWILL CHURCH/John Calvin

존칼빈의 기독교 교리 #7 목사, 권위, 전통, 출교, 정부

 

* 교회의 목사들과 그들의 권위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성례들이 인간들의 봉사를 통해 우리에게 시여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백성들에게 순수한 교리를 가르치고 성례들을 거행하며 좋은 모범을 통해 사람들을 거룩하고 순수한 삶에로 훈련시키는 임직된 목사들이 교회 안에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이 훈육과 질서를 경멸하는 자들은 사람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다. 이들은 분파주의자들처럼 그러한 영적 직무가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교회 공동체로부터 이탈해 버린다.

주님께서 언젠가 증언하신 말씀은 실로 적지 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 즉 주님께서 보내신 목사들이 영접을 받을 때 이것은 주님 자신이 영접을 받는 것이요 저들이 거절을 당할 때 주님 자신이 거절을 받는다는 것이다.

 

목사들의 목회직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확고부동한 직책이 되어 지도록 목사들에게는 매기도 하고 풀기도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 권한에는 약속이 부가되어 있다 : 즉 그들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거나 풀면 하늘에서도 매거나 풀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곳에서 맨다는 것은 죄를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을 뜻하고 푼다는 것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을 뜻한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복음이 믿는 자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가르칠 때 어떻게 푸는지를 말해주고 있으며, 그가 모든 불순종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다고 말할 때 어떻게 매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복음의 개요는 우리가 죄와 죽음의 노예라는 것,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며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다 준엄한 정죄의 새로운 사슬에 의해 속박을 받게 된다는 이것이다.

 

그러나 성서 안에서 목사들에게 부여된 권위는 전적으로 말씀의 봉사에만 억류되며 제한되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 권위를 사람들에게 부여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에 부여하신 것이며, 사람들이란 단지 주님께서 이 말씀의 봉사자로 삼으신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봉사자로 임명된 목사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과감하게 수행할 수 있기를! 저들이 세상의 모든 권세, 영광 그리고 고귀함을 굴복시켜 이 말씀의 엄위하심에 복종케 할 수 있기를! 저들이 이 말씀을 통하여 가장 위대한 사람들로부터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명령할 수 있기를! 저들이 그리스도의 전을 세우며 사탄의 주권을 파멸할 수 있기를! 저들이 양들을 치며, 이리들을 죽이고, 순종하는 자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며, 거역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돌이키며 설득할 수 있기를!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수행할 수 있기를!

 

그러나 만일 저들이 언제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 저들 자신의 머릿 속에서 나온 몽상과 공교한 말을 따를 경우, 저들은 더이상 목사로서 용납되어질 수 없다. 이들은 해로운 이리들이므로 마땅히 면직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말씀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지 말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 인간의 전통

 

우리는 바울이 말한 일반적인 규칙을 소유하고 있다 : 즉 교회에서는 모든 일들이 단정하며 질서있게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얽어 매는 사슬처럼 기능하여 교회 안에 질서와 예절을 유지해 주며 평화와 일치를 견지해 주는 법규들을 인간의 전통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우리가 그것들을 구원에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그것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양심을 구속하지 않는 한, 그리고 그것들이 예배에 관련되거나 경건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한, 이 규정들은 바울사도가 말한 규칙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하나님의 영광에 필요하기나 한 것처럼 영적인 법이라는 미명 하에 양심을 속박할 목적으로 제정되는 규정들에 대해서는 힘차고 단호하게 저항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얻어 주신 자유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참 종교를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오직 당신의 말씀만을 통하여 우리의 양심을 다스리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우리의 것이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씀과 '인간의 계명이 가르쳐지는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헛되이 섬김을 받는다'는 말씀은 확고부동한 진리가 되어야 한다.

 

 

 

* 출교

 

출교란 명백한 방탕자, 간통자, 강도, 살인자, 수전노, 강탈자, 부정한 자, 싸움꾼, 폭음폭식가, 술주정뱅이, 폭도 그리고 낭비가들이 권고를 받고도 교정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성도의 공동체로부터 추방되는 것을 말한다.

 

교회가 이들을 출교할 때 이들을 항구적인 파멸과 절망 속에 빠뜨리려는 의도에서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생활과 품행을 정죄하려는 것 뿐이며, 그들이 행실을 고치지 않을 경우엔 정죄받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주기 위함이다. 이 권징은 신자들 사이에 필요불가결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머리되신 분의 영예를 손상시키는 악취나며 부패한 자들에 의해 더렵혀지거나 오염되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권징은 성도들이 행악자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부패, 타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한 행악자들의 악이 징벌을 받는 것은 당사자 자신들에게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관용을 통해서는 더욱 더 완고해지는 반면 권징을 통해서는 수치심에 의해 겸허해져서 자기 갱신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행악자들이 스스로를 갱신할 경우 교회는 이들을 교회의 공동체 안으로 그리고 전에 배제된 바 있던 일체성에의 참여에로 관대하게 다시 받아들인다.

 

어느 누구도 교회의 판결을 완강하게 멸시하거나 또는 성도들의 판결에 의해 정죄되었다는 사실을 하찮게 생각하지 않도록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판단이 바로 당신 자신의 판결 선언이며 성도들이 땅에서 행하는 바는 하늘에서 인준되어진다고 증거해 주셨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그들은 타락한 자들을 정죄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은 자신을 갱신한 자들을 다시금 은혜 안으로 영접할 수 있다.

 

 

 

* 정부

 

주님께서는 정부의 직무가 단지 당신 자신에 의해 승인받은 것이요 당신 자신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고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이 직무를 우리에게 강력히 추천하셨고, 이 직무의 품위를 아주 명예로운 칭호들로써 영예롭게 해 주셨다.

 

주님께서는 정부의 직무가 당신 자신의 지혜로부터 나온 행위라고 단언하신다 :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그리고 다른 곳에서 주님은 정부의 직무를 맡은 이들을 '신들'이라 칭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 자신의 사역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의 다른 개소에는 그들이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공의를 행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해 보다 길게 논술하고 있는 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은 아주 분명히 가르치기를 다스리는 자들이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규정된 것이며, 다스리는 자들은 선해하는 사람들을 칭찬함과 아울러 행악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징벌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군주들과 시장들은 자신들의 직무로 누구를 섬기는 것인지에 대해 숙고해야 하며 하나님의 종이요 대리자라는 그들의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그 어떤 것도 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전 관심사는 종교(예배)의 공적 형태를 순수하게 보전하고, 좋은 법률을 통하여 백성의 삶을 지도하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신복들의 행복과 평화를 마련해 주는데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정의와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곧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통치자들에게 특별히 권고 되었다.

 

정의란 무죄한 사람들을 보호해 주며, 지지해 주며, 보전해 주며, 해방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공정한 재판이란 악한 자들의 방약무인함에 대항하여 맞서며, 그들의 폭력을 꺾으며, 가증한 범죄행위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반면에 신복들의 의무는 단지 그들의 정보 당국자들과 상관들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그들의 안녕과 행운을 주님께 빌며, 자발적으로 그들의 권위에 굴복하고, 그들의 법령과 규약들에 복종하며, 그들에 의해 부과된 짐들 곧 세금, 통행세, 공물, 시민봉사, 징용 그리고 그와 비슷한 다른 것들을 거부하지 않는데 있다.

 

우리는 법에 따라 그리고 통치자의 의무에 상응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만 복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력을 포악하게 남용하는 자들도 인내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엔 우리가 합법적인 질서를 통해 그들의 멍에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그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한 군주가 인간의 안녕을 보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증거임과 마찬가지로 불의하고 고약한 군주는 백성의 죄를 징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채찍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자에게든 후자에게든 권력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 그리고 이들에게 반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하는 일이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확실한 사실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에 대한 복종에 있어서 언제나 한 가지 예외사항만은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이 때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철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분의 법령에는 모든 왕들의 명령이 마땅히 굴복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왕들의 왕이시다. 주님께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입을 여실 때 모든 인간들은 그분의 말씀에 경청해야 한다. 그분만이 모든 인간들 위에 서서 경청되어져야 할 유일한 분이시다. 결국, 우리들이 우리 위에 세움을 입은 사람들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은 단지 주님 안에서만 그러하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들이 주님을 거스려 어떤 명령을 내릴 경우 우리는 그것을 행하거나 거기에 마음을 쓰지 말고 오직 성서에 있는 이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 '사람들에게보다는 하나님께 더 복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