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2: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예전에 제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이 책을 소개해 드린적이 있는데요.
이 책에 보면 사막을 건너는 방법들을 몇 가지로 설명하면서 그중에 아주 참 인상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사막을 건너는 방법 중에서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인생은 하나도 변함이 없는 그런 산을 오르는 것이 인생이 아니다 인생은 너무나 가변적인 그래서 바람 한번 휙 불면 있던 도로가 없어져 버리고 또 바람 한번 휙 불면 없던 도로가 생기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는 이 사막을 횡단하는 것 같은게 이게 인생이다 너무 그게 와닿는 겁니다.
누가 그걸 원했습니까만 병이 찾아오고 실직을 하게 되고 가정에 아픔을 겪고 이게 바로 이 사막 같은 가변적인 상황에 놓이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이 사막 같은 인생을 살아가다가 보면은 우리는 때때로 이 모래에 갇히는 것과 같은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난다는 겁니다.
이게 왜 위험한가 하면은요 이 바퀴가 사막 모래에 빠져버리면 평상시 자기가 자랑하던 운전 실력, 뭐 경험, 하나도 소용이 없어지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인생의 바퀴가 사막 모래에 빠지는 이런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게 되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게 뭘 뜻하는지 뭐 대략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자기가 의지했던 경험 지식 그리고 또 이런 교만한 태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어 내 인생의 타이어는 튼튼해 문제 없어 그래 가지고 이제 스스로 그 모래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면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다가 이런 위기를 만나면 이제 자기가 뭘 해보겠다고 자꾸 발버둥 치는게 아니라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것처럼 힘을 빼야 된다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지난 주에 우리가 살펴본 시편 147편 10절 11절이요.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지금 내 인생의 타이어가 사막 모래에 빠져 있는 이것만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들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래서 내 힘 빼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런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다 그런 내용의 메시지가 바로 이제 사막에서 바퀴가 그 모래에 빠지면 이제 힘 빼야 된다 타이어 바람을 빼야 된다 그게 주는 메시지가 이런 거 같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도 이런 차원으로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인데요 바울이 이제 그 고린도 교회를 떠난 이후에 그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계속 전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제가 분당 우리교회를 사임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갔는데 계속 분당우리교회에서 들려지는 이야기가 이찬수 목사님 떠나시고 나서 이 교회가 지금 문제가 생기고 쪼개질 위험이 있고 그리고 후임으로 오신 분이 알고 봤더니 삯꾼 이래가지고 막 교회가 지금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뭐 그런 이야기가 들려지면 막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아요 뭐 잠을 이룰 수 있겠냐고요.
바울이 지금 그런 상황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쓰는 거거든요.
실제로 이 고린도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교회 안에서의 분쟁과 파벌 의식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린도전서 1장 11절에서 기록합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그 분쟁이 어느 정도인가 하니까요 그 다음 12절입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이게 지금 교회가 편이 갈라져 가지고 뭐 나는 담임목사편이다 나는 장로들 편이다 나는 부교역자 편이다 뭐 이런 식으로 막 지금 산산 조각이 나 있는 겁니다.
제가 목회를 해보니까요 뭐 교회에 어려움이 있고 뭐 문제가 좀 있어도요 성도님들이 딱 한 마음으로 단합이 돼 가지고 그렇게 대처해 나가면 아무 일도 아니더라고요.
교회가 가장 위험한게 그게 자꾸 마음이 갈라지는거. 가정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제 그 문제점들을 보고 아픈 마음으로 참 눈물로 쓴 편지가 그게 고린도전서에요. 고린도후서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제가 이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주목하는게 이 바울이 제시하는 대안이 너무 간단해요.
뭐 누가 잘했느니 누가 잘못했느니 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뭐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없고요 굉장히 간단해요.
사도 바울의 해법이 바로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2장 1절과 2절 있데 그 해법을 한번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게 지금 바울이 뭘 강조하는가 하면은 이런 얘길해요.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언제 여러분들에게 내 말과 내 지혜의 아름다움을 의지해서 말씀을 전한 적 있습니까. 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 의지해서 말씀을 전했는데 교회가 왜 이렇게 자꾸 분쟁이 생기는 겁니까. 교회가 자기의 말과 자기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다투고 있는게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강조하는 거는 대안은 하나예요.
교회는 각자각자가 그냥 나 잘났다 너 잘났다 그러면서 자기의 말과 자기 지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는 거죠.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오늘 본문을 제가 묵상을 하면서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제가 주목하는게 있습니다.
2절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말 성경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빠졌는데 이게 헬라어로 보면 이게 원어로 보면은 거기에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이 접속사에요.
"왜냐하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의지하는 건 자기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을 의지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어떡한다구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 말고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뭘 했다고요? 작정했다 작정.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머리로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깨달은 말씀을 가지고 자기 삶에서 결단하는 거예요.
난 이렇게 하기로 결단하는 거죠.
바로 이 본문 말씀 2절에 대하여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이런 제목의 책이 있는데요.
이 책에 보면은 왜 바울이 이렇게 비장하게 결심을 하는가 결단을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는 그 대목이 나오는데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해설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사도는 대체 왜 이런 결심을 한 것일까요?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과 교회가 같은 결심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날 교회가 바로 이 결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능력을 잃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너무 동의가 돼요.
오늘 이런 말씀 우리가 왜 읽어야 된다고요?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결심하는 거죠.
나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외에는 의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없기를 결단합니다 결심합니다.
왜 이게 필요한가 하니까요 지금 여러분 한국 교회도 참 가슴 아픈 현실 아닙니까.
교회가 지금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 무시당하고 있는게 현실 아니냐고요.
이 옛 어른의 그 깊은 영성을 가진 이 목사님의 진단에 따르면 왜 이렇게 됐냐고요.
우리가 이 바울과 같은 이런 결단은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새해가 되면은 많은 결심을 하지 않습니까.
아 이제 내가 건강을 위하여 내가 운동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막 헬스 클럽 끊고 막 1년치 끊었는데 이제 두 주밖에 또 안 하고 뭐 이것도 문제긴 한데요.
또 막 결심을 하잖아요. 내가 새해에는 이제 내가 새벽에 일어나기로 결심했다 아 내가 이제 성경을 내가 좀 읽어야 되겠다.
새해에요 운동을 해갖고 뭐 건강을 찾기 위해서 그 운동을 결심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 다 좋은데요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이 이제 이 새해에 해야 되는 결심이 있다면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의지하겠다 이 결단이 우리에게 좀필요하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늘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하면서 사도 바울이 하는 이런 결심 이런 결단 그 내용이 왜 이게 인생에 유익하냐 이거를 제가 두 가지로 제가 정리를 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이 바울의 결심이 가진 두 가지 의미가 뭐냐 첫째 이게 능력 회복의 문제예요.
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의지하겠다고 결심을 하는가 하면은 저는 그 답을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 결심 하느냐고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내가 이게 뭐 예수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뭐 예수님도 의지하고 세상도 의지하고 이래 갖고는 거기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은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고 쪼개지고 싸우고 다투고 이러니까 이제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가 되어서 이제 나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 내가 의지하겠다 이렇게 결단을 해야된다는 거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이 자꾸 이제 이 십자가를 미련한 것이라고 그렇게 오해를 하는데요 교회가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 우리가 구현해야 되는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고린도전서 4장 20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저는 이 고린도전서 4장 20절을 올해의 모든 성도님들이 마음에 담는 올해의 성구로 삼고 싶습니다.
저부터가 말이 너무 많아요.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셔 가지고 우리가 그를 닮은 제자들이다 보니까 말이 너무 많아요.
근데 말이 많은 거에 비해가지고 능력이 별로 없잖아요.
우리 모두가 각오하고 결단하고 이제 저도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 내가 한번 결심하기 원합니다 이제 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더 중요한 건 이제 우리가 이런 걸 목표로 삼자구요.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변화에 있습니다.
자꾸 이상하게 교회 와서 시험에 드는 분이 계시는데요 아니 교회에 이상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그리고 이제 다락방 모임 같은데 한번 딱가 보고 아 이거 안가 그 다락방갔더니 막 그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 안 갈래 그게 다 오해에요.
아니 여러분 교회에는 원래 이상한 사람들이 모이는 데에요.
아니 병원에 그 아픈 분들이 가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 무슨 병원에 막 쌩쌩하고 건강한 사람들로 꽉 차 있으면 그 병원 문 닫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교회는 영적인 병원이에요.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요.
막 세상에서 낙오자, 받아주지도 않고 막 저렇게 이상해 가지고 세상에서 누가 받아 주느냐고 그런 사람들을 받아주는게 교회입니다.
그래서 뭐 진짜 교회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봐도.
지금 쓱 둘러 보세요. 뭐 다 이상해요. 여러분이 쓱 봤는데 뭐 다 멀쩡하구만 그러면 자기가 이상한 거예요 지금.
여러분의 담임목사 뭐 옛날에 저 참 이상했습니다. 괴팍하고요. 뭐 지금도 그런데요. 공사 중이죠 나아지고 있죠.
저는요 작년에 이 손톱이 빠질 것처럼 그래서 다 죽었다가 완전히 살아나는데요 새해가 밝아도 이게 내 인생의 교훈이에요.
이걸 만져보면 이게 울퉁불퉁해요.
아무 일 없었던 이쪽 손톱은 매끈매끈한데 이거는 울퉁불퉁해요 이게 은혜에요 못생겼어요 지금도.
근데 이게 지금 공사 중이래니까요. 좋아지고 있는거거든요. 이게 우리에요.
다치고 상하고 깨지고 그래서 그냥 마음에 울분이 많고 또 마음에 또 좀 이제 성격적으로 온순한 분이 상처가 많으면 자꾸 위축이 되고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그래서 저는 확신을 하거든요 이제 이 오른 손톱도요 반드시 이제 정상으로 돌아올거라고.
그래서 저는 채근하지 않아요. 기다려 주면서. 그래서 이게 습관이 됐습니다. 계속 제가 만져요.
이 은혜가 되는 거죠. 이게 저였는데.
그래서 여러분 교회는요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요 문제가 뭐죠 교회가 이상한 사람이 모였는데 안 변하는게 그게 이상한 거라는 거죠.
제가 최근에 어느 교회가요 신천지 때문에 몸살을 앓았는데 와 그 놀랍습니다.
그룹으로 그 교회의 침투해 들어와 가지고 십몇 년을 가만히 있었대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러다가 이게 이제 드러나면서 교회가 막 엄청 어려운 일을 지금 겪고있다 그래 가지고 제가 오 이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분당우리교회 안에도 있대요. 그래서 저는 기도하죠.
하나님 여기 분당우리교회에도 신천지가 지금 그렇게 침투시켜 가지고 지금 10년째 지금 이 안에 다락 방에도 나가고 다 그렇게 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면 저는 기도해요.
하나님 그들이 10년 동안 이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듣기 때문에 10년 지나고 완전히 복음으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변화가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뭐 그런 분 저는 많을거라고 믿거든요.
혹시 이중에 지금 신천지에서 몰래 왔다가 은혜받고 변화된 분 손 들어 보세요.
아 괜찮아요. 진짜 이거는 박수쳐 드릴 일이거든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자꾸 뭐 교회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아 그러지 마세요.
병원에 가가지고 아 이렇게 환자가 많아 짜증나 그럼 그분이 이상한 거잖아요.
교회는 이상한 사람을 받아주는 곳이에요. 그런데 교회는 아까 뭐라 그랬죠.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이론 받아적는게 그게 예배가 아니고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 현장이 예배거든요.
여러분 한번 저를 따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세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었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그 능력 있는 복음의 말씀 앞에서 '어 내가 이상하네 나 이런 사람 아닌데 아니 왜 자꾸 저 사람이 내가 용납이 되지 난 이런사람 아닌데 어 내 자꾸 어떻게 저 사람 용서가 되지 아니 이 대목에 내가 지금 불같이 화가 나야 되는데 아니 이렇게 화가 안 나지 이상하네'
이게 남 얘기가 아니고 제 얘기예요.
그러면서 다시 울퉁불퉁해요.
점점 좋아질 거라는 그 기대감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그래서 이걸 만질 때마다 낙심이 되는게 이게 아직도 울퉁불퉁한 얘가 아니에요.
반드시 변화될 깨끗해질 이 손톱을 제가 기대하면서 이거를 이렇게 습관적으로 만질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이게 내 모습인데 이게 교회예요.
능력이에요 능력.
여러분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그 흑암과 혼돈 가운데 빠져있던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창세기 1장에서 시작이 되는데 저는 여기서 반복되는 그 패턴을 제가 너무 제가 은혜를 최근에 다시 받았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렇게 선포하시고는요 3절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어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 패턴이 계속됩니다.
자 1장 6절 한번 보십시오.
맨 먼저 시작하는게 뭡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에 물로 나뉘게 하시니' 결론 '그대로 되니라'
시작이 하나님이 이르시되구요 결과가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이게 뭘 이야기 하느냐고요. 하나님 말씀이 가진 능력이에요 변화시키는 능력.
우리가 지금처럼 이렇게 세상 사람들한테 조롱당하고 그까짓 교회가 그게 뭐 그게 그 웃기는 집단이지 뭐 하는데냐 교회가 이상한 것들이 모여가지고 이렇게 교회를 조롱하고 이렇게 한다 할 때 그것을 대응하는 유일한 우리의 대응은 하나예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거죠. 하나님의 능력.
그래서 아 나도 그 예수 믿기 전에는 당신처럼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예수 믿고 그게 아니더라 교회는 능력이더라 변화를 일으켜 주더라 내 안에서 이상한 그 신기한 마음이 무너지고 낙심되고 절망되는 상황에서도 신비하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새 노래를 만드는 걸 경험하더라 당신도 와서 이거 한번 경험해봐라 이게 교회여야 되는거죠.
저는 J.D. 그리어라는 분이 쓴 '지저스 컨티뉴드'라는 그 책에서 이 책의 부제가 요즘에 제 마음의 구호에요.
이 책의 부제가 이렇습니다. '복음으로 천하를 어지럽게하라' '복음으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라.'
이게 저와 여러분의 구호가 되기를 원해요.
복음으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라. 막 지금처럼 막 분쟁으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라 이건 안 되잖아요.
복음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복음의 능력으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라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사도 바울의 이 결심. 나는 결단 하노라 이게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가하면 두 번째로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결심이 가진 의미가 뭐냐 이건 그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의 문제라는 겁니다.
지금 바울이 '나는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겠다.'
이 결심이 중요한 이유는요 자기가 이제 주님에게 집중할 때에 아까 거기서 능력이 나타나는데요 그래서 여러분 누가 이제 회사 갔더니 여러분 보고 어 근데 그 종교가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아 나 기독교입니다 그리고는 아 나 예수 믿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만약에 여러분 하시잖아요 그 뜻은요 아 나는 예수 믿습니다 이 말은요 나는 예수님만 믿습니다 이런 뜻이에요.
나 예수 믿습니다 이 말은 나는 예수님만 믿습니다 이런 뜻이라니까요.
어 나는 예수님도 믿고요 난 돈도 믿고요 또 필요할 때 부처님도 믿고요 또 알라신도 믿습니다 그건 예수 믿는게 아니에요.
나는 예수믿습니다 이 신앙 고백에는 나는 예수님만 믿습니다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지금 나는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나는 결심했다 결단했다 이거는 나는 예수 제대로 믿겠다 그 표현이에요.
왜 그래야만하느냐고요.
왜 여러분이 예수님만 믿어야 되는지 아십니까.
이건요 그 주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의 문제예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5장 5절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리고 요한복음 15장 4절이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지금 주님의 이 말씀은요 지금 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건 이건 생존이에요.
이거는 삶과 죽음의 문제예요. 그래서 저희 교회는 강단에 꽃꽂이를 안합니다.
아 뭐 예산 절약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는 어떨 때 그 예쁘게 꽃꽂이한 꽃을 보면 어떨때 슬퍼요. 어떤때 진짜 슬퍼요.
그 멀쩡하게 가지에 붙어 있던 꽃을 우리 필요 때문에 그거 뚝 꺾어 가지고 그래서 이 꽃꽂이를 해 놨는데요 우리 필요를 위해서 그 꽃가지에서 이 꽃을 꾹 꺾는 그 순간 이 꽃은 죽은거예요.
이 꽃꽂이를 보면 슬퍼요. 이건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죽은 꽃인데.
그래가지고 이 꽃꽂이게 뭐 한 달 가는 걸 봤습니까.
가지에 붙어 있을 때 영양 공급받고 하던 그것이 연장돼가지고 버티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하나님 없이 이 세상에서 너무나 그냥 화려하고 막 엄청난 분들을 보면은 저는 항상 꽃꽂이로 생각해요.
어 지금 너무너무 아름다운데 이게 아름답고 덜 아름답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왜 여러분 우리가 나는 예수님만 믿습니다 고백을 해야 되는가 하면 그거는 지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 위한 몸부림이에요.
안간힘을 쓰는거거든요.
제가 두 주 전에 저희 어머니 소천 소식을 듣고는 이게 뭐 이제 연말에 막 이제 비행기표 구하기도 너무 어렵잖아요.
그래서 막 부랴부랴 막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급하게 장례 치르려고 비행기를 탔는데요.
그 와중에 제가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네권을 갖고 갔어요.
그리고 노트북을 갖고 가서 그걸 옮겨 적고 하려고 그렇게 막 무겁게 해가지고 갔는데요 그 네 권 중에서 유독 제가 계속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 있는데요 그게 아까 소개해 드렸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 이 제목의 책이에요.
아주 얇은 책인데요 지금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가는 너무 가슴 아픈 그 상황 속에서 제가 왜 이 책을 계속 읽었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참 놀라운 분이에요.
제가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이제 새해는 분당우리교회가 부흥을 선언하기 원한다 이제 한번 분당우리교회는 일어설 것이다 한번 달려갈 것이다 꿈을 꿀 것이다 이런 마음의 소원을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오래 전부터 이제 2024년 새해 첫 주 첫 예배는 이제 오늘 이 본문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선포하는 것으로 내가 말씀을 전할 것이다 이렇게 이미 준비해 놓은 거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 개인에게 먼저 그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비행기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많이 다짐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 오늘 본문이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 책을 보면서 비행기 타고 장례 끝나고 돌아오는 중에도 또 읽었습니다.
이걸 제가 다짐을 했더니 우리 하나님께서 저에게요 제 마음을 맴돌게 하는 찬양을 주셨습니다.
이것도요 장례가 났기 때문에 이 찬양을 제가 받은게 아니고 2024년 분당우리교회가 다시 한번 제 2의 전성기를 꿈꾸고 부흥을 꿈꾸고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고 그래서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계속 묵상했더니 하나님이 이 찬양을 저에게 주신지는 한 한두 달 됐을까요.
그랬는데 이게 본격적으로 제 마음에서 작동을 해요 이 찬양이.
심지어는 장례식 중에 하나님이 제 마음에서 막 이 찬양을, 가사를 제가 다 못 외워요.
그래서 이제 다 가사를 부르지도 못하는데 막 제가 애를 쓰면서 이 찬양의 곡조를 가지고 막 그렇게 이제 장례식장에서 많이 울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이 찬양이요 '찬양의 심포니'라는 제목의 찬양입니다.
제가 가사 한번 읽어드릴게요.
'우주의 작곡자요 지휘자가 주의 오케스트라 앞에 서네 피조물은 정교한 악기 들고 하늘의 무리 환호하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건 상상력이에요.
영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지금 이 가사가 묘사하는 그 장면을 한번 머리로 한번 그려 보세요.
그다음 가사가 이렇습니다.
'찬란한 사계절 박자를 알리네 주님 신호에 태양 새벽나팔 부네'
지금 아침 일출을 이렇게 지금 묘사한 거예요.
'회오리 바람 힘차게 불어와 지휘봉에 맞춰 몰아치네 대양의 파도가 해안을 두들기고 은하수 춤추며 회전하네 거치른 박자로 빗방울 떨어지네 천둥과 번개도 손뼉 치네 심포니로 찬양 주님께서 지휘하시네 크고 작은 만물들 모두 소리 높여 심포니로 찬양해"
그리고 그 다음 가사가 주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존귀 존귀 죽임당하신 어린양 심포니로 찬양 옛부터 계신 주께 영광 크고 작은 만물들 모두 소리 높여 심포니로 찬양해 존귀 존귀 죽임당하신 어린 양 존귀 존귀 어린양 예수 심포니로 찬양 심포니로 찬양'
장례식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데 미국은 또 그 고인의 그 장례 관을 열잖아요.
예쁘게 화장을 하고 그래서 제가 막 어머니가 어 잘 잤다 그러고 막 일어나오실 것 같은거에요.
그 눈물의 장례식 가운데 하나님이 이 찬양을 제게 주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놀라운 깨달음을 주셨는데요 이 찬양을 막 아마 한 수십번 수백번을 제가 계속 되뇌었을겁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두가지 깨달음이 이거예요.
지금 내 영혼이 연주자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한다면 내 인생의 지휘자는 예수그리스도세요.
여러분 내 인생의 지휘자. 저는요 소천으로 인한 어머니의 부재가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리고 저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저는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제가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 확실한데요 그러나 여러분 저희 어머니는 내 인생의 지휘자가 아니세요.
내 인생의 지휘자는 예수 그리스도세요.
저희 어머니는요 주님의 지휘에 인생을 온전히 맡겼던 저의 선배 연주자세요.
지난주에 이제 장례가 끝나자마자 막 부리나케 귀국 해 가지고 그렇고 이제 지난 주일 예배를 막 얼마나 제가 은혜롭게 힘차게 뭐 은혜로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막 소리크게 지르면서 그렇게 예배를 드렸잖아요.
송구영신 예배 때는 더 했습니다 막.
너무너무 힘차게 송구영신 예배 드리고 막 아니 저분이 지금 상중에 있는 거 맞나할 정도로 막 뜨겁게 뜨겁게 그렇게 송구 영신예배를 드렸더니 그랬더니 지난 한 주 내내 메일이 왔어요 문자도 오고.
저를 아끼는 분들이 눈물로 메일을 보내 주셨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목사님 그 애 쓰시는 건 고마운데 울고 싶을 땐 우셔야 됩니다.
이런 위로가 되게 많았어요 울고 싶을 때 우셔야 됩니다.
아니 참 부족한 저를 그렇게 위로해 주시는 거 너무 감사한데요 근데 여러분 그 오해예요.
제가 이제 울고 싶은데 참는게 아니고요 제가 지난 주일 예배 송구 영신 예배 오늘 지금 이 시간 제가 하나님 앞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거 여러분 그 슬픈 거 맞거든요 그리고 한편으로 눈물도 사실 맞아요.
그러나 제가 하나님 앞에서 아 내 인생의 지휘자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어머니는 그 불편한 몸을 훌훌 벗고 이제 천국으로 가셨다면 나는 여전히 우리 어머니의 지휘자가 되시고 내 인생의 지휘자가 되시는 그 주님만 바라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 이걸 자꾸 하나님이 제 마음에 주세요.
그 지휘자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슬픔을 당한 제 마음에 계속 새 노래를 주세요.
그런가 하면은 제가 이렇게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요 지난주에 막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제가 설교할 수 있었던 거는 저의 선배 연주자 되시는 어머니가 뭘 원하시는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저에게 유언을 주셨어요.
너는 목사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
네 감정 때문에 말씀 준비 소홀하면 안 된다 어떤 경우라도 성도 사랑하는 일 니가 니 자식들을 사랑하는 거 내가 아는데 네 자식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성도들을 사랑해야 된다.
선배 연주자님께서 저에게 그런 지침을 주셨기 때문에 힘을 얻는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요 이런 아픔을 겪고 저런 슬픔을 당하지만 또 희로애락의 감정이있어서 눈물을 흘리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알아요.
주님이 내 인생의 지휘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그것이 저를 무너지게 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그분은 나를 지휘하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런가하면 또 하나 깨달음이 있었는데요 제가 이 찬양의 심포니라는 찬양을 묵상할 때 깨달은게 우리 삶의 지휘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우리 삶에 그분이 원하시는 악보가 필요하다는 거죠 악보.
이 악보가 그분이 주신 성경이에요.
우리 성가대를 보면은 어떨 때 다 이제 악보 안 보고 외워서하잖아요.
그건요 악보 없이 제멋대로 한다는게 아니에요.
악보를 너무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다 외우신 거예요.
그리고 지휘자 보고 집중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찬양이 그 연주가 되는 거 아닙니까.
분당 우리 교회는 말씀묵상 이찬수 목사가 이 교회 지휘고요 이찬수 목사가 악보고요 그러면 이 교회는 망하는게 나아요.
지휘자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악보.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하여튼 우리 교회에서 적응하고 계시려면 말씀 묵상하셔야돼요
한구절 묵상 이거.
어떻게 해서든 악보를 소중 여기는거죠.
홈페이지 들어오시면요 이제 또 1년 1독, 또 3년 1독, 드라마 바이블,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읽기, 성경 읽기표 여러 종류에 여러분들이 골라하시도록 다 내놓은 이유는 악보가 없는데 무슨 찬양을 연주합니까.
오늘 결론을 이렇게 맺기 원합니다. 오늘은 새 첫날이에요.
새해 첫날 두 가지 하셔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 제가 이제 내 인생의 지휘자가 내 남편이 아니고 내 아내가 아니고 내 자식들이 아니고 내가 우리 부모님을 존경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보다 앞선 연주자시지 우리 부모가 내 인생의 지휘자가 아닌걸 알게 됐습니다.
내 인생의 지휘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다루고 있는 악보.
성경말씀을 내가 가까이 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제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자고요.
맨날 그 아무것도 아닌 거 가지고 맨날 다투고 싸우고 오해하고 섭섭하다 그러고 막 이 좀 좀 이제 지긋지긋하잖아요.
큰 그림을 그리면서 태양이 올라오고 우주가 움직여지고 그 우주를 지휘하시는 그 하나님이 내 인생의 지휘자가 되신다는 사실.
그런가 하면은 작년에 계속 강조 드렸잖아요.
올해부터 분당우리교회의 예배는 관람객 한분이세요.
하나님 한 분을 모시고 그분 앞에 거대한 연주를 드리는게 예배에요.
그분 앞에 퍼포먼스에요.
그래서 우리가 받아적고 참 은혜받고 이것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신이에요.
더 표현 하자고요 더 강렬하게 표현하자고요.
그걸 오늘 할 거예요.
이제 여러분 아까 제가 소개해드렸던 찬양의 심포니라는 이 찬양을 여러분 모두가 성가 대원이 돼서 올려 드릴텐데요.
이제 우리 이동선 전도사님과 찬양팀 그리고 좀 번거롭겠지만 우리 찬양 대원을 강단으로 초대를 좀 했습니다.
우리 한번 모든 성도님들이 거대한 퍼포먼스 유일한 관람객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 찬양을 올려드릴 텐데요.
먼저 오래 전에 저희 연합 성가대에서 이 찬양의 심포니를 연주를했는데요 이제 먼저 이걸 한번 들어 보세요.
이 찬양을 여러분이 먼저 들으면서 가사를 한번 집중해 보시고 내가 이제 이 연주자가 될 거야 이제 그런 아름다운 첫 주일 예배를 올려 드리기 원합니다.
이제 그 영상을 다같이 함께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영상과 찬양 끝)
여러분 새해가 밝았다지만 이게 저절로 밝아지는게 아닙니다.
달력 뜯는다고 밝아지는게 아니고요 우리 영혼에서 찬양이 울려퍼질 때 그때 밝아지는거거든요.
이 예배 영상 하고요 또 우리 아까 연합 찬양대가 불렀던 영상을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바로 올려 드립니다.
저처럼 막 듣고 또 듣고 또듣고 또 들으세요 그리고 다짐하세요.
내 인생의 지휘자가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 분이 원하시는 악보 말씀을 내가 묵상하고 사랑하겠노라고.
그래서 이 세상은 해가 바뀌어도 달라진 하나도 없습니다.
들리는 소리가 우울하고 누가 무슨 범죄를 했고 누가 뭐 어떻게 죽었고 이런 우울한 소리가 들려지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내 영혼을 지휘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그 어두움의 영향을 받아 우울한 인생이 아니라 여전히 여러분 말씀드렸잖아요.
내 영향을 많이 받은게 어머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사건이 저에게 눈물을 주고 아픔을 주는 거 사실이지만 이제 육신을 훌훌 벗어 주님 앞에 천국 가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감격하고 감사하고 또 새 노래를 주셔서 여전히 마음에서 기쁨으로 노래하는 이 은혜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에게 임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한번 첫 주 첫 예배에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 내 인생의 지휘자가 되어 주시기 원합니다 우울한 소리가 들리고 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잃기도 하고 원하는 일을 잘 이루지 못한 아픔이 있다할지라도 여전히 내 인생을 지휘하시는 여호와 그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힘을 내겠습니다 우리 가정을 살려 주시고 우리 자녀들을 보살펴 주시고 하나님 한번 분당우리교회가 올해 영적으로 부흥을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한 목소리로 우리 주님 앞에 통성으로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하나님 아버지 사막을 지나는 것 같은 이 고단한 인생길에서 내 운전 솜씨를 자랑하고 내 차바퀴를 자랑하던 우리 인생이 그 사막 모래에 바퀴가 빠져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건 내 사전에 없었는데 이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내 인생의 바퀴가 사막의 모래에 빠져서 어떻게 벗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더 깊이깊이 빠져들어가는 그 일들을 우리가 겪고 있다 할 때에 지금은 힘을 뺄때구나 지금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을 경외하며 그래서 하나님 우리 모두가 다 이런저런 당황스러운 일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이를 먼저 하나님께 보내드리고 원하지 않는 일을 겪어 마음이 아프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은 할 수 없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여전히 우리 인생의 지휘자가 되어 주시옵소서.
첫날 첫 예배 주님 앞에 올려 드리오니 매 예배 때마다 유일한 관람객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모시고 온정성을 다하여 아름다운 연주를 예배를 통하여 올려 드리도록 이 한해 동안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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