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의 3대 요소
종교는 저마다의 고유한 교리와 섬기는 대상과 그 절차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교의 기본적인 3대 요소를 든다면 믿는 대상과 그 대상을 섬기는 의식과 그 종교가 제시하는 내세관이라고 하겠다.
기독교는 이상의 3대 요소를 훌륭하게 제시하는 가장 우월한 종교로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으며, 어떤 종교도 그 내용을 같이할 수 없는 고도의 예배 의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지속으로 인한 내세관이 가장 확실하게 제시되어진 유일한 종교이다.
이러한 기독교 예배에는 예배를 움직이는 세 축이 있는데, 그 하나는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이고, 또 하나는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또 하나는 그 예배를 인도하는 집례자이다.
일단 기독교 예배의 대상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우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일체의 형상마저 만드는 것을 금하고 계신다.
타종교들의 예배 대상은 인간 주도적인 예배의 내용과 형식을 따르는 반면 기독교 예배는 예배의 대상인 창조주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피조물이 순종할 따름이다. 따라서 기독교 예배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나 인간이 피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구원받은 기쁨"의 응답적 표현으로 예배를 드리기 원하신다.
구약의 상황 속에서는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인간들이 엄격한 제도 아래 예배를 드리도록 명령하셨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그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새 계약과 함께 예배의 질서를 세우시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을 부르고 계신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살아 계셔서 인격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다. 그는 예배자들의 주님으로서 그들의 삶의 방향과 내용을 주관하시며 그들의 경배를 받으신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절대적 존재이시며 세상의 주관자로서 오늘도 우리의 예배에 임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 그분과의 만남이 예배에서 이룩되어야 한다.
예배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은 예배자들의 심성을 다 아시는 분이시며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예배자들을 가까이 부르시며 그들을 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속에 예배자들을 위한 계약의 이행을 변함없이 고수하신다.
* 예배를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들
예배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의 대화이기 때문에 반드시 예배를 드리는 무리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예배와 관련하여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또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건들이 무엇일까?
먼저는 하나님을 깨닫는 지각적 문제이다.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이 예배드리는 자들의 생명을 이 땅에 허락해 주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위대한 은총 속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결정적인 희생을 통하여 죄인 된 몸들이 구원받은 자녀로 부러 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고 머리를 숙이는 깨달음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참된 예배자들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 허물과 모순 앞에 눈물을 흘리는 심오한 경지를 체험해야 한다. 이 떄의 기쁨은 새로운 자아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변화를 가져오는 경험적인 차원에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란 인간을 개종시키는 신비한 능력의 종교로서 이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이러한 경지에 이르는 경험적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소중한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생동력 있는 신앙을 소유하는 방편이다.
또한 기독교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로서의 경배와 찬양, 감사와 봉헌, 참회, 간구와 같은 이 모든 것들이 응답으로써 표현되어야 한다. 진지한 응답에 공감하고 모이는 곳이 바로 교회요, 그 무리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 행위를 가리켜 예배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에서 예배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첫째로 믿음이다. 셩경은 믿음이 없이는 예배의 궁극적 목적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아브라함, 모세 등이 드린 예배는 독실한 믿음의 소산들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믿음이란 당장 보지 못하고 만질 수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따르는 변함 없는 자세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예배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기 실존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앞에 초점을 맞출 신앙의 사람은 예배의 순간 속에서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자각하게 되며 거기서 참된 삶의 방향을 늘 정립하게 된다.
또한 예배자들은 지적인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많은 예배자들이 자신의 지성적 기능에 의한 예배를 드리기보다는 감정에만 도취된 채 흥분 상태 속에서 맹목적으로 예배하는 심각한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다. 특별히 개신교의 예배가 말씀 중심임을 감안할 때 이성적 기능의 정상적 가동이란 예배자들의 기본적인 바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예배자들은 영적인 세계의 이해와 도움을 필요로 한다. 기독교는 그 출발부터 인간이 창조한 이성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는 종교이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드리는 것이 예배자들의 바른 길이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어느 여인에게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진리 가운데서 예배를 드려야 하며, 그 예배는 성령님 안에서 구체화해야 한다. 성령님의 임재 안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자신들의 이지적 판단을 초월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며 늘 새로운 신비의 역사를 가져오게 된다. 즉,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모든 예배의 주권적 행사는 예배하는 사람들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이끄시는 역사 속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예배자들은 예배를 드릴 때에 자기 결핍을 느껴야한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만족에 빠져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기도를 했던 반면 많은 무리들은 자신들의 결핍된 모습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자신의 결핍과 모순과 허물을 알고 계시지만 정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 찾아와 용서를 구한 무리들은 하나님께 환영을 받고 마음의 기쁨을 얻었다.
* 예배 집례자의 중요성
1517년 종교 개혁과 더불어 강력하게 주창된 만인 사제론은 예배의 집례자에 대한 강력한 불신의 표현이었으며 성직자 위주의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따라서 루터가 만인 사제론을 외치면서 그 시대의 교직 계급을 비판하고 나섰을 때 열렬한 호응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만인 사제론은 재세례파와 같은 급진주의 개혁 종파들에 의하여 사제 무용론 내지 사제 경시 현상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오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에 동참하여 필경에는 계승자들이 되어야 할 사도들을 먼저 선택하고 그들을 훈련시켜 최종적으로 세상에 내보내셨다. 그들이 보냄을 받고 주신 능력에 감사하며 사명감 속에서 활동했을 때 비로소 교회가 성립되었고 또 확장되어 갔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도 사도적 정신과 사명을 확고히 지닌 목사에 의하여 그 예배가 집례되고 말씀이 성실히 선포되어야만 더욱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당연한 귀결에 이르게 된다.
'제 1 스위스 신앙고백'에서는 말씀과 성례전, 즉 예배를 위하여 특별히 세운 교회의 사역자를 일컬어 "하나님이 동역자"로 표현하고 있고 칼비는 말씀을 외치고 성례전을 집례하는 존재를 가리켜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전권대사"라고 정의하면서 그 권위와 기능을 재확인해 주고 있다.
이러한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거기에 기꺼이 응답하는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특별히 예배를 드리는 전체적 책임과 말씀의 선포를 맡은 인도자의 철저한 준비는 필수적인 것들인 바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준비란 집례자의 성결의 문제이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몸으로서 자신을 이해할 때 이러한 인간적인 고통은 극복이 가능한 것이고 또한 당연히 이겨내지 않으면 안될 문제이다. 또한 늘 고결한 경건과 맑은 영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성도들의 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격적인 흠이 노출된 예배 인도자가 서 있는 곳의 에배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의 성직자만은 학문적인 차원에서도 지도자적 수준을 유지해 주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적인 요소로서 건강과 용기와 근면의 삶이 그 목사에게서 보여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따라서 비록 출발은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 무리들의 요구를 충분히 채워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그리고 만인 사제론에 대해 유명한 예배 신학자 지글러 교수의 말을 들어 이야기하자면
"모든 신자가 모두 제사장이라는 교리는 각 사람이 단순히 자기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 제사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의 회중의 모든 회원들은 공중 예배에서 한 책임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즉, 만인 사제론이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웃을 향하여 자신을 희생적 존재로 바치는 데 그 참뜻을 갖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역자들은 오늘도 우리의 교회와 예배의 현장에 필연코 있어야 할 존재들이며 또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세지가 우리의 곁에 찾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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