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ODWILL CHURCH/예배학

예배학 #5) 예배 내용의 역사

 

* 예배 내용의 중요성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예배의 대상과 그 예배를 드리고 집례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서술한 바 있다. 그 가운데서 창조주 하나님,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구속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의 대상임을 밝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현장에는 폰 알멘의 주장과 같이 주님의 위탁을 받은 합법적 대리자요, 사도적 전승을 갖고 있는 목사가 그들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사명감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지적하였다. 또한 예배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신에게 드리는 것이기에 그 자신들이 인식하고 경험하고 응답해야 할 문제가 반드시 있음을 밝혔다.

 

이제는 예배의 현장에 있어야 할 내용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집례자와 회중이 함께 예배라는 이름 아래서 어떤 내용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내용을 수반하지 않은 예배란 예배 본래의 가치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의 구경거리로까지 전락되고 만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값진 내용 없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섬기는 대상에 대한 결례요, 예배자의 충실치 못한 자세의 노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예배 가운데서 단순히 신의 성호만을 부르짖는다든지 막대한 헌금을 던지고 나오는 행위가 결코 예배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 예배란 예배자의 마음과 뜻과 정성이 모아진 총체적 표현이어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신앙과 교리 또는 신학이 합리적이고 적극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며 현재까지 지켜오고 있는 성경적 내용과 전통의 핵심들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 문제에 대하여 네빌 클라크는 그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예배 예전이란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응답 사이에서 발생되는 구속적 만남의 장소이다. 그러기에 이 만남의 장소에서는 그 예배의 기준과 구조가 성경적으로 기초되어져야 하고 신학적으로 뿌리가 내려져야 한다."

 

클라크가 지적한 대로 예배는 구속적 만남의 현장으로서 인간들의 친교나 봉사만을 강조하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무리들이 스스로 쌓은 제단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서 있는 경우 그 예배는 종국적으로 의미 없는 결말을 가져오고 만다. 이런 경우는 개혁자들의 지적처럼 "마술사들의 주문이 성행하는 장소"로 오해를 받게 된다.

 

사실상 기독교의 역사 속에는 의미의 전달이 사라진 채 이렇듯 형태만 남은 예배가 중세를 계속 지배해 왔던 부끄러운 상처들이 있다. 그 결과 교회는 부패하였고 예배 집례자들의 세속으로의 탈선은 예사로 여기게 되었으며, 급기야 세계의 역사마저 어둡게 만드는 암흑기를 불러왔다. 그러기에 오늘도 수많은 예배의 집례자들과 예배 신학자들은 생동감을 잃어 가는 틀에 박힌 예배를 막기 위하여 예배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거듭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예배의 내용과 표현이 얼마만큼 역동적이고 신선한가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회중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 구약의 예배 내용

 

유대 민족이 그들의 하나님을 섬겨 온 것에 대한 내용과 형태의 기록으로 구약 전체를 드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역사는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이 전부였고, 그 명령과 섭리 속에서 민족의 존폐가 결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모세에 의하여 수록된 제사 제도는 레위기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대 민족의 종교에 남아 그대로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역사가 포로와 귀환과 파멸이라는 궤도를 달리는 가운데, 때로는 성전 예배를, 때로는 회당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변천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예배 현장에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예전의 형태나 구체적 기준을 거기에서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솔로몬읭 성전 봉헌에 나타난 예전의 형태나 레위기에 나타난 각종 희생 제사등은 그 유형적 분석이 가능하나 효율적으로 우리의 예배와 연관시키기에는 많은 거리감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늘의 예배에 연관지을 수 있는 말씀의 예배 및 그들이 가졌던 각종 축일과 희생제의 중요한 부분만을 간략하게 살피고자 한다.

 

1) 말씀으로 이어졌던 구약의 예배

과연 구약의 예배 가운데 나타난 말씀의 예전은 어떠했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1926년 시편 연구가로 유명한 궁켈이 시편 주석을 펴냄으로써 주어졌다. 그의 연구는 시편을 전쟁, 죄, 좌절과 감사의 경험을 가진 한 인간의 호소로만 여겨 오던 종전의 해석을 벗어나 시편의 많은 부분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쌓는 예전 중에 읽혀지기 위하여 기록되어졌다는 새로운 주장을 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본 시편 24편은 시온산의 성전에 회중이 접근하면서 부르짖은 노래로서 오늘날의 예배로 부름과도 같았다. 그리고 시편 24편의 다른 부분은 예배 인도자로부터 하나님을 찾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허락을 받는 부분이었다고 본다. 여기 본문들을 순서대로 옮겨 당시 예배의 첫 부분에 대한 현장감을 느껴보도록 하자.

 

제사장 :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회중 :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제사장 :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다함께 :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이러한 말씀의 교송 가운데서 예전적 잔치는 계속되었고, 그 절정에 이르러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언약궤를 성전 안으로 메고 들어왔다. 그때 시편 24편의 후반부가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고 본다.

 

제사장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회중 :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제사장 : 영광의 왕이 뉘시뇨.
회중 :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제사장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회중 :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제사장 : 영광의 왕이 뉘시뇨.
회중 :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그 외에도 축일의 예전에 시편의 말씀이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시편의 상당한 부분을 예전에서 사용된 말씀들로 분류시키는 연구들을 접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시편의 많은 부분이 예배 예전에서 활용되었던 말씀이라고 볼 때, 이 언어를 통한 예전 가운데는 다음 다섯 가지의 큰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1) 그들은 창조의 역사 뿐만 아니라 이집트로부터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계속 부르짖었다.
(2) 그들은 여호와께서 언제나 유대 민족의 적들을 파멸시키고 전쟁으로부터 보호하신 것에 대한 감격적인 최상의 표현을 했다.
(3) 여호와는 언제나 승리의 신이시기에 궁극적 승리는 언제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다는 신념의 표현이 있었다.
(4) 언약의 불성실을 탓하면서도 인자한 여호와의 속성은 늘 새롭게 그들과의 언약을 체결하고 계심을 믿는 신앙을 소유했다.
(5)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대망의 신앙을 간직하는 노래를 불렀다.

 


2) 삼대 절기의 예전


오늘의 교회와 연관지을 수 있는 예배의 내용으로 유대인들의 삼대 절기를 들 수 있다. 구약에 나타난 여러 절기 가운데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유월절은 원래 농목 사회에 근거를 둔 누룩 없는 빵의 절기로서 첫 결실들을 바치는 계절이었으나, 후에 출애굽의 사건과 함께 해방절로서 신학적인 의미를 갖는 절기가 되었다. 오순절은 원래 맥추절로 불렀으니 후에 시내산의 언약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예전 가운데 행하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장막절은 본래 광야에 천막을 치고 포도와 올리브를 거두면서 그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다. 그러나 이것은 시내 광야의 40년 방황 시절을 생각하는 기념적 행위로 지키게 되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종교력은 농목 사회에서 발생되었던 절기적 행사들이었지만, 곧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 신학적 의미를 새롭게 내포하게 되었고, 유대 종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구약에서 지켜지고 있었던 이러한 절기의 감각은 기독교가 이어 받은 중요한 유산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오늘의 교회가 구약과 같은 절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지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력을 제정하여 절기를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신과 내용은 바로 이 유대 민족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력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생애를 전후하여 우리의 예배 가운데 도입되었다는 점은 이러한 측면에서 깊은 관심을 모으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3) 각종 희생 제사의 예전


구약의 각종 예전적인 기록 가운데 예배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은 각종 희생 제사이다. 이들이 드렸던 희생 제사의 기본 정신은 단순한 제의적 행위라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실한 연관성을 보여 주는 신앙의 표현이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신앙심의 발로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들이 드린 희생 제사의 형태는 크게 다섯으로 분류되는데, 그 제사마다 특유한 의미가 있다.

 

(1) 번제는 구약 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드리는 제의였다. 이 번제가 갖는 의미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표현으로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날마다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상징하였다. "주님께 향내 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을 목적으로 동물 전체를 불태워 바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때 제사장은 짐승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한 뒤 성소 입구 제단 북쪽에서 잡아 각을 뜨고 피를 뿌린 후 내장과 다리는 씻어 제물 전부를 제단 위에 불태워 드렸다.
(2) 소제라고 불리는 이 제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라기보다는 그들의 제사장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제의이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제사작에만 머물도록 하는 데 중심을 둔 부양적 성격을 가진 제사였다. 먼저 밀가루를 비롯한 곡물을 가지고 제단 앞에 나가 지극히 작은 부분을 태우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는 관례를 지켰다.
(3) 화목제의 제의는 주로 하나님과 화평의 교제를 고수하고 이웃과의 친교를 목적으로 하는 데 중심을 둔 제의였다. 이 때 예배자들은 자의적으로 감사의 예물과 함께 새로운 결단을 드리면서 잔치를 가졌다.
(4) 속죄제의 제의는 하나님께 속하는 날로서의 속죄일을 정하고 제사를 드렸다. 이 제의는 율법을 범한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제사였다. 이 날에는 백성 전체가 금식하였으며,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하여 지성소 안에까지 들어가 속죄제를 드렸다. 그들은 이러한 제사를 통하여 용서받은 기쁨을 소유하는 특유의 효과를 체험하였다.
(5) 속건제는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 저지른 과실로 인한 손해 배상을 위해 드렸던 제의였다. 이 제의는 다른 제의와는 달리 피를 제단에 바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제의가 속죄의 의미보다는 배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종 제사를 갖는 예배자들의 분위기는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죄의 용서를 구하는 속죄제나 속건제를 제외하고는 모든 제사가 기쁨의 잔치로 펼쳐졌다. 그들의 제사가 노래와 춤, 악기의 사용과 환호성 등으로 환희의 분위기를 형성했다는 점은 지금 우리 예배 모습과 관련하여 새로운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감사와 희망이 가득한 제전을 쌓았던 신앙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난날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총을 찾았고, 오는 미래 속에서 한결같은 소망의 신앙을 소유했던 점은 오늘의 우리 예배 속에서 반드시 수용해야 할 주제들이라 하겠다.

 

 

 

 

* 신약의 예배 내용

 

성전 예배가 회당 예배로 변천하게 된 이유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 잃어버린 성전 예배를 회당 예배로 대체시키면서 예배 내용 자체에도 많은 변화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전 예배의 요소를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장엄한 예배 의식은 축소시켰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심을 키우려는 노력만은 언제나 뚜렷했다. 율법의 준수를 비롯한 유대교 전통을 철저히 수호하려는 의지는 그렇듯 줄기차게 지속되어 왔다. 이 때의 예배 내용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무리들에 의하여 진행된 예배는 회당 예배의 순서에 더욱 친근감을 갖게 하였으며, 후에 기독교 예배로서의 요소와 의미를 부여하는 데까지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들이 사용했던 예배 순서의 중요한 내용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먼저 성경을 읽는 일이었다

회당 예배에서는 주로 율법서를 봉독하였다. 그리고 랍비들이 그 말씀을 강해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질서를 세워 나가는 일을 했다. 그리고 율법서의 봉독과 더불어 자녀의 교육을 위한 하나의 신조처럼 여겼던 쉐마 암송이 성행하였다. 이 쉐마는 주로 신명기 6:4~9, 13~21, 그리고 민수기 15:37~41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중요한 신앙과 교훈과 윤리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다.


2) 기도의 순서였다

이 때의 공식 기도는 인도자가 선창을 하고 회중이 그것을 반복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기원이나 자유 기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기도의 내용과 형태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는 내용과 형태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는 늘 반복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진지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 대신 습관적 암송의 기도로 탈선되어 가는 경향이 짙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예리한 지적이 바로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마 6:5-7)는 말씀이다.


3) 영적인 예배를 강조하는 순서가 있었다

이는 회당 예배의 순서 가운데 뚜렷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도 어떤 제도적인 형태보다는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젖어든 예배의 실제로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아버니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마 7:21)는 표현이라든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고 하신 말슴 속에서 우리는 참 예배를 위한 영적인 운동이 민중 속으로 파급되어 가야 할 필요성과 함께 그것이 예배의 내용으로 정착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문제는 "당시의 예배에 관한 예수님의 태도는 어떤 것이었을까?"하는 질문이다. 우선 그가 구약 시대부터 전래해 온 성전 예배에 참석했다는 기록(눅 2:21-51, 요 7:14-49)이나 오염된 성전에서 화를 내신 기록(눅 19:45-46) 등을 보아 성전 예배를 지원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누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정기적으로 회당 예배에 참석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눅 4:16). 심지어 그는 유대인들의 절기에까지도 참여했던 것이 분명하다(요 7:2, 10:22).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예배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자신을 향한 예배가 되어야 함을 주장함녀서 유대 민족의 예배의 대상과 예배에 관한 사고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려 주었다. 이러한 새로운 해서은 바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분노를 유발하였고 십자가 수난으로 이어졌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성찬성례전을 제정하신 일이다

예수님은 3년간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예배의 결정체로서 새로운 내용과 형태와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바로 성찬성례전의 제정이다. 지금까지 피 흘린 각종 희생 제사들을 마감짓고 스스로를 단번에 드린 희생의 제물로 삼으신 사건은 예배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얻게 하였다.
이 새로운 예배의 장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열두 제자를 모아 최후의 식사를 하면서 자신을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희생당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밝히시는 사건이었다. 이로써 지금까지 구약적인 예배의 의미가 새로운 예배로 전환되었다. 이러므로 성찬성례전은 신약에서 새롭게 제정된 예배로서 기독교 예배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사도 시대와 그 이후의 예배 내용

 

예수님과 함께 회당 예배에 참석하고 때로는 예루살렘 성전에도 참례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고난 사건 이후 어떤 내용의 예배를 드렸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기록이 뚜렷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의 초기 생활을 설명해 주는 사도행전을 비롯하여 서신서들과 계시록을 통해서 볼 때 예배와 관련된 네 가지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로 윌리암 맥스웰은 지적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한동안 회당이나 성전 예배에 참석했다.
(2) 그들은 모임을 자주 가지면서 애찬이라 불리는 공동식사를 했다.
(3) 그들은 이 식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부탁했던 명령을 받아 성찬성례전을 이어갔다.
(4) 이런 예전이 끝날 무렵에는 예언이나 방언을 비롯한 특별한 은사를 나타냈으나 대단히 조심하여 그것을 행하였다.


그러나 맥스웰은 2세기 후반에 이르러 두 번째의 애찬식 모임과 네 번째의 은사 교환 등은 기독교 예배의 구심점 밖으로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유의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성전 예배는 종언을 고하게 되었고, 회당 예배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 회당 예배마저도 로마의 박해 속에 지하의 교회로 숨어들어 가게 되었고 성도들은 비밀리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신고를 겪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 때의 초기 기독교인들이 어떤 내용으로 예배를 드렸는지에 대한 기록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 남겨진 다섯 개의 문헌은 초대 교회의 예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문헌들을 종합해 본 이 때의 예배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진다.

 

"첫째로 이들의 예배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써 먼저 예배자들의 마음을 주님께 드러냈다. 둘째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읽고 그 말씀의 뜻을 강해하면서 필요한 신앙과 행위에 대한 설교를 했다. 셋째로, 그들은 기도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주님의 기도를 비롯하여 감사, 간구, 남을 위한 기도, 축도 등과 주님의 재림을 소원하는 기도를 드렸고 아멘의 응답을 활용했다. 넷째로, 예물의 봉헌으로써 감사와 헌신의 표현을 계속했는데, 이 예물은 주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웃을 돕는 성도의 관심을 나타냈다. 다섯째로, 이들은 공동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고백과 신앙의 고백을 행하였으며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끝으로, 이들의 예배에 극치를 이루었던 성찬 및 예수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세례를 베풂으로써 예수님의 구속 사건의 새로운 다짐과 은총의 경험적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곧 자신들이 특수한 공동체임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었고, 이 예배 속에서 다져진 신앙은 성령님의 역사와 함께 복음 전파에 역동적 힘을 발휘하게 하였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예배에서 우리는 당시의 예배가 회당 예배와 절충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로마의 핍박이 절정에 달하면서 카타콤을 중심으로 한 비밀 예배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 오히려 이들의 예배는 기독교적 순수성을 지닌 예배로서 새로운 결속과 의미를 찾게 되었고, 교회의 조직과 예배의 형태를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다. 이 속에서 이들은 예배를 인도하는 집례자를 갖게 되었으며, 집례자와 성도들의 인사로부터 시작된 예배는 존엄성을 높이어 엄숙히 진행되었다. 특별히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의 응답적인 노래 속에서 신앙의 다짐을 거듭 확인했으며,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피로 뭉쳐진 예배하는 공동체 의식을 날로 굳혀 갔다.

 

 

 

 

* 동방 교회의 예배 내용

 

콘스탄틴 대제가 개종을 함으로써 지하의 교회가 지상으로 등장하고 기독교의 영역이 급팽창하는 시대가 왔다. 갑작스럽게 확장되어버린 기독교는 지역적으로 분할이 불가피했고, 그들의 특성에 따라 신학적인 교리의 성립을 허용해야 했으며, 예배의 형태도 곳에 따라 각각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가 동-서방으로 나뉘어지고 교회마저 예전의 내용과 형태, 그리고 신학의 차이에 따라 1054년 동-서방 교회로 분열이 되었다. 정통적인 예배 예전을 고집한 콘스탄티노플의 동방 교회와 자유로운 신학과 예전을 추구한 로마의 서방 교회는 분열 이후 각각 자신들의 고유한 예배 예전을 갖게 되었다.


동방 교회는 처음부터 예배의 형태나 내용을 급진적으로 수정하거나 이질적 방법을 취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동방 교회가 350~380년경에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를 중심하여 교구들을 정착시키고 나섰을 때부터 예전의 독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헬라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이 지역은 시와 문학과 예술과 철학을 숭양하여 그것이 많은 부문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은 일찍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성전의 구조에서부터 예전의 순서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상상력과 시적인 표현을 가미했다. 자연히 동방 교회 안에는 수많은 상징이 놓이게 되었고 미적인 장식과 깊은 신비의 가시적 추구가 현저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언어를 사용한 말씀의 예전보다는 신비의 능력과 표현이 담겨 있는 성찬 예배에 더욱 큰 강조점을 부여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방 교회는 성전 구조와 대다수의 상징 벽화에까지 하늘나라의 예배 현장을 말한 사도 요한의 설명(계 4-5장)을 그대로 보이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등 그칠 줄 모르는 변화를 모색하여 갔다. 이러한 장식과 신앙적 형태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보여 주고자 하는 신앙심의 발로라는 긍정적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 현장은 결국 개혁자들의 눈에 우상 숭배라는 이름으로 쉽게 낙인이 찍혀지고 말았으며, 이단적 취급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예전에 대하여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될 때 먼저 느낄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즉, 동방 교회가 380년경 '사도헌장'의 제8권에 근거를 두고 시행한 예전의 내용을 통해 볼 때, 지금도 그들을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로 이단시하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예배의 한 모형이다. 정교하고 치밀한 내용으로 다듬어진 예전의 모습에서 경건과 신비감을 경험하게 된다.


말씀의 예전

[기도 : 연도]
성경봉독 (구약, 서신서, 복음서)
설교
예배 신자 해산


다락방 예전

부제의 연도와 주교의 기도
인사
평화의 입맞춤
봉헌
     집례자의 손 씻는 의식
     성찬대의 성물(떡과 포도주) 봉헌 - 부제
     제의 착용
     제단 보호
수르숨 코다(마음을 드높이)
성찬 기도
     예비 기원 : 창조와 섭리에 대한 감사
     쌍투스(삼성송)
     감사 기도
     아남네시스(재현)
     성찬 제정사
     회상과 봉헌
     축성 기도
     대 중보 기도
     주기도문
부제의 연도와 주교의 기도
거양 성체
     '거룩하시다'
     영광송(눅 2:14)
     베네딕투스(마 21:9)
배찬
성찬 참여
부제의 권면
성찬 후 감사 기도
강복 선언
폐회

 

 

 

 

* 서방 교회의 예배 내용

 

오늘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로마를 중심하여 발전하면서 서방 교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동방 교회와 입장을 달리하면서 예배의 형태와 내용에 있어 지극히 자유로웠던 교회라고 말한다면 아마 약간의 혼동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방 교회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갖게 되었을 때 서방 교회의 자유롭고 분방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서방 교회 예배의 내용과 순서도 역시 초기 기독교의 예배 형태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 말씀의 예전과 성찬성례전(다락방 예전)등은 그들의 예배의 부동의 구심점이었으며 그 외에는 특별한 변화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이 시기에 동방 교회는 그들의 문화권의 영향 아래서 수많은 상징과 형태를 가미해 갔다는 사실은 이미 논한 바 있다. 여기에 반하여 서방 교회는 로마인들의 심성 그대로 실용주의 정신이 예배 속에 적용되어졌다.

 

그 결과는 바로 교회 건축에서부터 나타나서 동방 교회와는 외형상의 모습도 전혀 달리하게 되었으며 예배의 내용마저도 단순화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실례로서 현재 그들의 미사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수르숨 코다(Sursum Corda, 마음을 드높이)나 종을 치는 순서, 촛불의 사용, 그리고 분향과 부복의 자세 등이 5세기까지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단순화 작업이 성전 내부의 모든 장식이나 상징에 있어서까지 개혁자들이 지적했던  차원에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서방 교회도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감각을 살리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드려움과 경외를 갖도록 하는 성전의 장식과 구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서방 교회의 상징적 장식이나 구조가 초대 교회의 형식에 크게 벗어나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교회사적 상황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초대 기독굑도들은 이와 같은 상징이나 건물을 마음껏 소유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결코 초대 교회 교인들이 이런 것을 소유하기를 거부했다기보다 카타콤 예배의 현실이 그것들을 허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후의 교회들이 가진 상징과 구성이 초대 교회와는 반대되는 것이라고까지 정죄할 필요는 없다.


서방 교회의 예배 내용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일단 네 시대로 분류하여 생각함이 좋다. 먼저, 헬라어가 기독교 세계를 지배하던 500년경까지를 한 시대로 보고, 다음으로 라틴어가 서방 교회 예배의 전용어로 등장하던 500년부터 시작하여 모든 로마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로마식 의식과 유럽 전역에 영향을 끼쳤던 갈리칸 의식이 병존하던 때가 두 번재 시대이다. 그리고 세 번째 시기는 로마식 의식이 온 서방 교회의 예배를 지배하기 시작한 900년경으로부터 종교 개혁가지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겠다. 마지막 시기는 최근의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있었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들게 된다. 여기서 종교 개혁 당시에 있었던 자체 개혁의 주장이 이룩되었다. 이 회의에서 예배 예전의 헌장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듯 서방 교회는 시대별로 예배의 내용을 독특하게 장식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것들을 모두 다룰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그 중요성에 비추어 보아 교황 그레고리(Gregory the Great, 590-604)가 확정했던 예전 의식과 1570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결정되어 최근까지 사용되어 온 예전 의식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 본다.

 

1) 그레고리 예전 의식


말씀의 예전

 

사제의 입장 때 두 찬양대에 의한 입당송
키리에
사제의 인사
기도문
예언서 또는 구약성경 봉독
교창
서신서 봉독
층계송(시편이 한 목소리로 처음부터 불려진다)
할렐루야
복음서 봉독
예비신자의 해산

 

성찬성례전

 

봉헌 : 떡과 잔의 드림, 제단 위에 성체의 배설(준비), 영성체를 위한 준비, 예물의 봉헌, 포도주에 물 혼합(이 동안에 시편이 불려짐)
인사 예절과 수르숨 코다(마음을 드높이, Sursum Corda)
성찬 기도
     예배 기원
     삼성송
     전문
평화의 입맞춤
성체 분할
주님의 기도
성찬 참여
영성체 후 기도(감사)
부제에 의한 해산


2) 트렌트 예전 의식


말씀의 예전

 

입당송
키리에
     사제의 입당
     사제의 개인적 준비(제단 계단에서 조용히)
대영광송
인사와 기도문 봉독
서신서의 노래(부제에 의한 노래 응답)
찬양대에 의한 층계송
영창
     복음서를 통한 기도와 준비
복음서 봉독
설교자의 등단
     예고
     초대의 기도
     자국어에 의한 서신서와 복음서의 봉독
     강론
니케아 신조(대 영광송 곡에 맞추어)
인사와 초대의 기도


성찬성례전

 

봉헌 : 빵의 봉헌(기도문 낭송)
       포도주에 물을 섞음
       잔의 봉헌(기도문 낭송)
       기도
       향의 축복
       성물에 분향
       제단의 분향
       사제의 분향
       사제의 손 씻음
       성물 봉헌
인사와 서송
상찬의 기도
       예배 기도
       삼성송
       거양성체
       전문 마감
사제에 의한 주기도문 찬미
평화의 인사와 성체 분할, 빵과 포도주의 혼합
하나님의 어린양 찬미
사제의 영성체
       기도
       사제에게 평화의 입맞춤
       감사 기도
       분잔의 말씀
       감사
       분잔의 말씀(잔을 받고)
영성체
영성체 시편송
       잔을 씻음
       기도문
       잔을 덮음
인사와 영성체 후 기도문
부제의 인사와 신자들의 해산
기도문
강복 선언
마지막 복음서 봉독과 응답송

 

이상의 두 예전 의식을 보면 그레고리 교황은 초대 교회의 예배와 큰 차이를 두지 않은 채 단순한 예전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트렌트 공의회에서 확정된 의식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과 함께 복잡한 구조가 그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예식 모두 라틴어로 진행되었던 상황을 연상할 때 예전으로서의 실감보다는 회중이 방관적 자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을 실상도 생각하게 된다.


중세의 교회를 장악했던 이 예전이 주는 문제점들은 무엇보다도 집례하는 사제의 존재가 너무 신비스럽게 취급되었던 점과, 회중이 예전의 내용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성찬의 현장에 놓인 성물이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신학은 예배 현장을 완전히 신빈의 자리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예전의 신비성은 죽은 자의 영혼 구원에까지도 효과를 줄 수 있다는 탈선적 신앙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거기에 더하여 7성례를 비롯한 성모 마리아 및 성자들의 숭배 행위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십계명의 해석에 혼돈을 가져오는 중대한 오류를 낳고 말았다. 이러한 탈선적 신앙과 지나친 신비의 강조는 중세의 암흑기를 대표하는 현상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은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 서서히 깨우치기 시작한 지성의 세계로부터 비판적 시각을 사게 되었으며, 종교개혁이라는 대 역사의 출현을 가져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