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이타 디아 데카테싸론 에톤 팔린 아네벤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메타 바르나바 쉼파랄라본 카이 티톤
개역개정,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새번역,1 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말성경,1 그 후 14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가톨릭성경,1 그러고 나서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영어NIV,1 Fourteen years later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this time with Barnabas. I took Titus along also.
영어NASB,1 Then after an interval of fourteen years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with Barnabas, taking Titus along also.
영어MSG,1 Fourteen years after that first visit, Barnabas and I went up to Jerusalem and took Titus with us.
영어NRSV,1 Then after fourteen years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with Barnabas, taking Titus along with me.
헬라어신약Stephanos,1 επειτα δια δεκατεσσαρων ετων παλιν ανεβην εις ιεροσολυμα μετα βαρναβα συμπαραλαβων και τιτον
라틴어Vulgate,1 deinde post annos quattuordecim iterum ascendi Hierosolyma cum Barnaba adsumpto et Tito
히브리어Modern,1 אחרי כן מקץ ארבע עשרה שנה שבתי ועליתי לירושלים עם בר נבא ואקח אתי גם את טיטוס׃
성 경: [갈2:1]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십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첫번째 방문은 그가 회심한지 삼년 후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고(행 9:26), 두번째 방문은 안디옥 교회의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으며(행 11:29,30), 세번째 방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러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행 15:1 이하). 본절에 나타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이 이차 방문인지 삼차 방문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갈라진다. 먼저 두번째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견해(Bruce, Calvin)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행 15장의 세번째 방문은 공적 회의에참석한 것이지만, 2절에 의하면 바울은 개인적으로 예루살렘 지도자를 만났으므로 세번째 방문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 행 15장에는 디도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으나 본절에는 디도와 바나바가 동행(同行)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본구절의 방문은 세번째 방문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3) 본절의 '다시'를 두번째 방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견해는, 만일 1:18에 기록된 방문이 첫번째 방문이라면 문맥상 본 구절의 방문이 두번째 방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진다. 다음으로 세번째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Berkhof, Eerdman, Findlay, Robertson). (1) 행 15장과 본장의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인데, 두곳 모두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할례'를 다루고 있다. (2) 행15장에서 지도자들간의 연합을(행 15:8,9) 강조하고 있는데, 본장에서도 동일하게 연합을 서술하고 있다(9절). (3) 행 15장이나 본장이 모두 유대주의자들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주장하고있다. 이상의 견해들 가운데 본절이 말하는 바울의 방문이 세번째 방문이라는 것이 더욱 타당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예루살렘 공의회의 연대를 A.D. 49년경으로 보고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연대를 추정하면 1차는 A.D. 35년, 2차는 A.D. 46년(행11:30;12:25), 3차 방문은 A.D. 49년에 이루어졌다. 여기서 만일 본장의 방문을 2차 방문과 연결시킨다면 바울의 1차 방문은 A.D. 46년에서 14년 전인 A.D. 32년의 되며 또한 그가 회심한 시기는 그보다 3년 전인 A.D. 29년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때가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이어야 하므로 불가능하다.(2) 두번째 방문을 주장하는 자들은 디도에 대한 언급이 행15장에 없다는 이유로 세번째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디도에 대한 기록은 사도행전 전체에서 누락되어 있다.(3) 바울이 두번째 방문을 생략한 것은 무슨 속임수나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이방인의 할례 문제를 다루는 본장에서 다른 주제, 즉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 문제를취급한 두번째 방문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성을 못느꼈기 때문이다. (4) '다시'(*, 팔린)는 두번째를 뜻하기도 하지만 요 18:27에서 베드로의 세번째 부인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두번째'를 의미하는 헬라어 '듀테론'(*)을 쓰지 않고 '팔린'을 사용한 것은 단지 방문의 반복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바나바 - 그는 레위 지파 출신의 유대인으로 구브로에서 태어나 바울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으로서 이방인들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그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 교회로 파송되었다(행 11:22).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으나 사도들은 그를 '권위자', '권위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바나바'로 불렀다(행 4:36).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로소(행 11:24) 초대 교회의 헌신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고 바울의 체험을 변호하며 함께 사역하였으나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마가의 동행 문제로 바울과 결별(訣別)하게 되었다(행 15:36-41).
디도 - 그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으로서 고린도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목회자이다(고후 8;23;12:18). 본절에서 이방인의 할례 문제로 등장하는 그는 바울이 '나의 참 아들 디도'라고 말할 만큼 바울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은 그가 로마에서 달마디아로 갔다는 것이다(딤후 4:10).
아네벤 데 카타 아포칼륖신 카이 아네데멘 아우토이스 토 유앙겔리온 호 케뤼쏘 엔 토이스 에드네신 캍 이디안 데 토이스 도쿠신 메 포스 에이스 케논 트레코 에 에드라몬
개역개정,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2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따른 것으로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도 제시했습니다. 다만 유명하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개별적으로 복음을 제시했는데 이는 내가 달음질하고 있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2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NIV,2 I went in response to a revelation and set before them the gospel that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I did this privately to those who seemed to be leaders, for fear that I was running or had run my race in vain.
영어NASB,2 And it was because of a revelation that I went up; and I submitted to them the gospel which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I did so in private to those who were of reputation, for fear that I might be running, or had run, in vain.
영어MSG,2 I went to clarify with them what had been revealed to me. At that time I placed before them exactly what I was preaching to the non-Jews. I did this in private with the leaders, those held in esteem by the church, so that our concern would not become a controversial public issue, marred by ethnic tensions, exposing my years of work to denigration and endangering my present ministry.
영어NRSV,2 I went up in response to a revelation. Then I laid before them (though only in a private meeting with the acknowledged leaders) the gospel that I proclaim among the Gentiles, in order to make sure that I was not running, or had not run, in vain.
헬라어신약Stephanos,2 ανεβην δε κατα αποκαλυψιν και ανεθεμην αυτοις το ευαγγελιον ο κηρυσσω εν τοις εθνεσιν κατ ιδιαν δε τοις δοκουσιν μηπως εις κενον τρεχω η εδραμον
라틴어Vulgate,2 ascendi autem secundum revelationem et contuli cum illis evangelium quod praedico in gentibus seorsum autem his qui videbantur ne forte in vacuum currerem aut cucurrissem
히브리어Modern,2 ואעל שמה על פי מחזה ואשים לפניהם את הבשורה אשר קראתי בגוים וביחוד שמתיה לפני החשובים שבהם פן תהיה לריק מרוצתי אשר ארוץ או רצתי׃
성 경: [갈2:2]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계시를 인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아포칼립신'(*)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어떠한 인간적인 동기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준다. 한편 행 13장에서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이방인을 위해 파송되는과정이 안디옥 교회의 결정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바울의 선교 사역이 교회의 결정에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본절에서 언급된 바, 바울의 선교 사역의 동기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은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결정 배후(背後)에 하나님의 계시하심이 있음을 확신하였을 것이다(Hendriksen)
달음질하는 것 - 바울은 개종 이후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당시의 운동 경기를 염두에 두어 묘사하였다. 그의 달음질은 향방없는 것이 아니라(고전9:26) 분명하고 확고한 목표를 향한 것이었다.그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도자들을 사사로이 만나는 면밀한 계획을 갖기도 하였으며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위해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결국 변하거나 바울의 달음질을 헛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갈라디아 교인들이었으므로 본절에는 바울 자신이 유대주의자들의 모든 거짓된 것들을 반드시 고치고야 말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알 우데 티토스 호 쉰 에모이 헬렌 온 에낭카스데 페리트메데나이
개역개정,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새번역,3 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성경,3 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었지만 억지로 할례를 받도록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3 나와 함께 있던 티토는 그리스 사람이었는데도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영어NIV,3 Yet not even Titus, who was with me, was compelled to be circumcised, even though he was a Greek.
영어NASB,3 But not even Titus who was with me, though he was a Greek, was compelled to be circumcised.
영어MSG,3 Significantly, Titus, non-Jewish though he was, was not required to be circumcised.
영어NRSV,3 But even Titus, who was with me, was not compelled to be circumcised, though he was a Greek.
헬라어신약Stephanos,3 αλλ ουδε τιτος ο συν εμοι ελλην ων ηναγκασθη περιτμηθηναι
라틴어Vulgate,3 sed neque Titus qui mecum erat cum esset gentilis conpulsus est circumcidi
히브리어Modern,3 אבל גם טיטוס אשר אתי אף כי יוני הוא לא הכרח להמול׃
성 경: [갈2:3]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거행하도록 명령하셨다(창17:10-14). 그러나 세월이 경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의 언약적인 의미보다는 종족적이며 문화적인 우월감의 상징으로서 외적인 할례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급기야는 구원을 위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안의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과 함께 할례를 시행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하여 이방인 신자들에게까지 할례를 강조했다. 할례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구약 호크마 창 17:1-14의 주제 강해 '할례 언약과 세례', 창 34:25-31의주제 강해 '할례 실시에 따른 제반 사항'을 참조하라. 한편 '억지로...아니하였으니'의 헬라어 '우데...에낭 카스데'(* ... )는 할례를 주장하는강한 압력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는 바울의 굳건한 의지를 나타낸다. 당시 갈라디아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회유(懷柔)에 말려들어 할례를 중요하게 생각한 상황에서 바울이 할례받지 않은 디도를 유력한 증인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디도가 갈라디아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디아 데 투스 파레이샄투스 프슈다델푸스 호이티네스 파레이셀돈 카타스코페사이 텐 엘류데리안 헤몬 헨 에코멘 엔 크리스토 예수 히나 헤마스 카타둘로수신
개역개정,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새번역,4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 / ㉠그, '거짓 형제들'
우리말성경,4 그 이유는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가톨릭성경,4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에 문제가 있기는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다시 종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들어온 자들입니다.
영어NIV,4 This matter arose because some false brothers had infiltrated our ranks to spy on the freedom we have in Christ Jesus and to make us slaves.
영어NASB,4 But it was because of the false brethren who had sneaked in to spy out our liberty which we have in Christ Jesus, in order to bring us into bondage.
영어MSG,4 While we were in conference we were infiltrated by spies pretending to be Christians, who slipped in to find out just how free true Christians are. Their ulterior motive was to reduce us to their brand of servitude.
영어NRSV,4 But because of false believers secretly brought in, who slipped in to spy on the freedom we have in Christ Jesus, so that they might enslave us--
헬라어신약Stephanos,4 δια δε τους παρεισακτους ψευδαδελφους οιτινες παρεισηλθον κατασκοπησαι την ελευθεριαν ημων ην εχομεν εν χριστω ιησου ινα ημας καταδουλωσωνται
라틴어Vulgate,4 sed propter subintroductos falsos fratres qui subintroierunt explorare libertatem nostram quam habemus in Christo Iesu ut nos in servitutem redigerent
히브리어Modern,4 מפני אחי השקר הנכנסים בסתר בתוכנו אשר באו לרגל את חרותנו אשר לנו בישוע המשיח למען העבידנו׃
성 경: [갈2:4]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 '거짓 형제'의 헬라어 '프슈다델푸스'(*)는 '프슈데스'(*)와 '아델포스'(*)의 합성어이다. '프슈데스'는 '거짓 사도'(고후 11:13),'거짓 선지자'(벧후 2:1)등에서 처럼 '거짓'이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본절에서 '파레이사크투스'(*,'가만히 들어온')와 함께 이 말을 사용하여 은밀하고 은근하게 복음을 훼손시키는 거짓 교사들의 교활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바울이 1:11에서 유대주의자들에게 미혹된 갈라디아 교인들을 '형제'라고 부른 것은 그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본절에서 유대주의자들을 향하여 '거짓 형제'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 속에 그들이 설 자리가 없음을 나타낸다.그러나 그들이 누구인가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그들은 최소한 내부에서 믿음을 배반한 사도들이나 성도들은 아닐 것이다(Lenski).아마 '거짓 형제'는 (1)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 그리스도인도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을 주장하며 모세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 자들이거나 (2) 공의회의 결과가 갈라디아와 안디옥 교회에 소개되었다(행 15:30).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에는 계속해서 교인들을 미혹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케 된 성도들을 다시 율법 아래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신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열심은 있으나 실제로는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였다(고후 11:26;벧후 2:1).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의 형편가운데서 디도가 할례 받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자유 얻은 자로 하여금 자유를 잃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호이스 우데 프로스 호란 에잌사멘 테 휘포타게 히나 헤 알레데이아 투 유앙겔리우 디아메이네 프로스 휘마스
개역개정,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5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5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가 여러분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가톨릭성경,5 그러나 복음의 진리가 여러분과 함께 길이 머물도록 하려고,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영어NIV,5 We did not give in to them for a moment, so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remain with you.
영어NASB,5 But we did not yield in subjection to them for even an hour, so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remain with you.
영어MSG,5 We didn't give them the time of day. We were determined to preserve the truth of the Message for you.
영어NRSV,5 we did not submit to them even for a moment, so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always remain with you.
헬라어신약Stephanos,5 οις ουδε προς ωραν ειξαμεν τη υποταγη ινα η αληθεια του ευαγγελιου διαμεινη προς υμας
라틴어Vulgate,5 quibus neque ad horam cessimus subiectioni ut veritas evangelii permaneat apud vos
히브리어Modern,5 אשר לא סרנו למשמעתם אף לא שעה אחת למען אשר תעמד בקרבכם אמתה של הבשורה׃
성 경: [갈2:5]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 복종을 요구하던 자는 디도에게 할례를 요구했던 무리들로 국한시켜 이해하기보다는 더욱 광범위한 의미에서 유대주의화를 꾀하던 '거짓 형제'들이 라고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사도 바울 일행은 위의 할례를 주장하는자들이나 율법을 강조하는 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어떤 서방 사본들에서는 '호이스우데'(*, '...한 자들에게 조금도...않다')가 생략되어 본 구절이 '잠시동안만 복종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사본에 의하면 바울이 잠시 동안만 평화를 위하여 타협할 수도 있었던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베자(Bezae) 사본을 제외한 모든 언셜(Uncial) 사본과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P46), 그리고 고대 헬라교부의 번역에서 '호이스 우데'는 생략되어 있지 않다. 또한 본장의 문맥상 바울이 거짓 형제들과 조금이라도 타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할례는 초대 교회의 최대 논쟁이며 또한 복음에 대한 최대의 도전(挑戰)이었다. 이 논쟁 앞에서 바울이 진리를 양보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Lenski).
복음의 진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알레데이아 투 유앙겔리우'(*)는 본절과 14절에만 나오는 것으로 '결함이 전혀 없는 복음'(Lightfoot) 또는 '진리가 담겨 있고 진리에 속해 있는 복음'(Burton)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복음을 들어 언급하는 것은 디도의 할례 문제는 한 개인의 구원 문제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 문제에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포 데 톤 도쿠톤 에이나이 티 호포이오이 포테 에산 우덴 모이 디아페레이 프로소폰 호 데오스 안드로푸 우 람바네이 에모이 가르 호이 도쿤테스 우덴 프로사네덴토
개역개정,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새번역,6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성경,6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사람들이 누구든 간에 내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은 내게 아무것도 보태 준 것이 없습니다.
가톨릭성경,6 주요하다는 그 인사들 쪽에서는, ─ 그들이 한때 어떤 사람들이었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 그 주요 인사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따로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영어NIV,6 As for those who seemed to be important--whatever they were makes no difference to me; God does not judge by external appearance--those men added nothing to my message.
영어NASB,6 But from those who were of high reputation (what they were makes no difference to me; God shows no partiality)-- well, those who were of reputation contributed nothing to me.
영어MSG,6 As for those who were considered important in the church, their reputation doesn't concern me. God isn't impressed with mere appearances, and neither am I. And of course these leaders were able to add nothing to the message I had been preaching.
영어NRSV,6 And from those who were supposed to be acknowledged leaders (what they actually were makes no difference to me; God shows no partiality)--those leaders contributed nothing to me.
헬라어신약Stephanos,6 απο δε των δοκουντων ειναι τι οποιοι ποτε ησαν ουδεν μοι διαφερει προσωπον θεος ανθρωπου ου λαμβανει εμοι γαρ οι δοκουντες ουδεν προσανεθεντο
라틴어Vulgate,6 ab his autem qui videbantur esse aliquid quales aliquando fuerint nihil mea interest Deus personam hominis non accipit mihi enim qui videbantur nihil contulerunt
히브리어Modern,6 ומאת הנחשבים להיות מה יהיו מי שיהיו אינני חושש לזה כי האלהים לא ישא פני איש לי לא הוסיפו החשובים מאומה׃
성 경: [갈2:6]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 바울은 세 번에 걸쳐 '호이 도쿤데스'(*, '유력한 자들')를 사용하여(2절)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 예루살렘의 사도를지칭하였다(9절). 이러한 호칭 후에 곧바로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는 것을 보면 바울이 이 호칭을 풍자적 의미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Cole).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 헬라어 본문에 나와 있는 후치사 '가르'(*)는 선행 구절을 보다 충분하게 설명해 주는 삽입구가 시작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 구절은 선행 구절에서 제시된 '외모를 취하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어떤 유명한 자들일지라도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과 동시에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것과 전혀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알라 투난티온 이돈테스 호티 페피스튜마이 토 유앙겔리온 테스 아크로뷔스티아스 카도스 페트로스 테스 페리토메스
개역개정,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새번역,7 도리어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유대 사람을 가리킴 ㉢이방 사람을 가리킴
우리말성경,7 오히려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받은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처럼 내가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았습니다.
가톨릭성경,7 그들은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NIV,7 On the contrary, they saw that I had been entrusted with the task of preaching the gospel to the Gentiles, just as Peter had been to the Jews.
영어NASB,7 But on the contrary, seeing that I had been entrusted with the gospel to the uncircumcised, just as Peter had been to the circumcised
영어MSG,7 It was soon evident that God had entrusted me with the same message to the non-Jews as Peter had been preaching to the Jews.
영어NRSV,7 On the contrary, when they saw that I had been entrusted with the gospel for the uncircumcised, just as Peter had been entrusted with the gospel for the circumcised
헬라어신약Stephanos,7 αλλα τουναντιον ιδοντες οτι πεπιστευμαι το ευαγγελιον της ακροβυστιας καθως πετρος της περιτομης
라틴어Vulgate,7 sed e contra cum vidissent quod creditum est mihi evangelium praeputii sicut Petro circumcisionis
히브리어Modern,7 ותהי להפך בראותם כי הפקדה לי הבשורה אל הערלים כמו שהפקד כיפא אל המולים׃
성 경: [갈2:7]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내가 무할례자에게...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 여기서 '할례자'와 '무할례자'는 구체적인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킨다(롬 4:9;엡 2:11 등). 유대주의자들은 베드로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서로 다른 것이 있다고 주장한 것 같다(Lenski). 그러나 바울은 사역상 서로 다른 책임이 있을 뿐 어디까지나 복음의 내용은 동일(同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할례자에게 복음 전하는 자로 열 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를 대표로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1)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있는 사도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Lenski, Huxtable). 그러나 전자는 타당하지 않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가이사랴와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또한 그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행 15:7). 바울 역시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한바 있다(행 23:11). 그는 또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행 26:20ff.)보아, 본절에서 바울이 의도하는 바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 자신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호 가르 에네르게사스 페트로 에이스 아포스톨렌 테스 페리토메스 에네르게센 카이 에모이 에이스 타 에드네
개역개정,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새번역,8 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유대 사람을 가리킴 ㉤이방 사람을 가리킴
우리말성경,8 베드로가 할례받은 사람의 사도가 되도록 역사하신 분이 내게도 역사하셔서 이방 사람의 사도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8 할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어NIV,8 For God, who was at work in the ministry of Peter as an apostle to the Jews, was also at work in my ministry as an apostle to the Gentiles.
영어NASB,8 (for He who effectually worked for Peter in his apostleship to the circumcised effectually worked for me also to the Gentiles),
영어MSG,8 (SEE 2:7)
영어NRSV,8 (for he who worked through Peter making him an apostle to the circumcised also worked through me in sending me to the Gentiles),
헬라어신약Stephanos,8 ο γαρ ενεργησας πετρω εις αποστολην της περιτομης ενηργησεν και εμοι εις τα εθνη
라틴어Vulgate,8 qui enim operatus est Petro in apostolatum circumcisionis operatus est et mihi inter gentes
히브리어Modern,8 כי הפעל בכיפא לשלחו אל המולים הוא פעל גם בי לשלחני אל הגוים׃
성 경: [갈2:8]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 - '사도로'의 헬라어 '에이스 아포스톨렌'(*)은 베드로의 지도자로서의 자리를 명확하게 인정하는 표현이다. 바울은 베드로보다 가문이나 학문에서 뛰어난 자로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신을 베드로보다 우월한 자로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는 바울의 겸손함이 포함되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바울이 이와 같이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사도로 세우신 이가 동일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과 베드로를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을 동일시함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거하고 있다. 두 사도 중에 하나는 유대인을 중심으로, 또 하나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사역했으나 그들의 사역의 내용은 같은 것이었으며 둘 다 동일한 섭리와 은혜에 의하여(고전15:9,10) 사도로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맺어지는 열매도 무할례자이거나 할례자이거나 동일한 것이었다.
카이 그논테스 텐 카린 텐 도데이산 모이 야코보스 카이 케파스 카이 요안네스 호이 도쿤테스 스튈로이 에이나이 뎈시아스 에도칸 에모이 카이 바르나바 코이노니아스 히나 헤메이스 에이스 타 에드네 아우토이 데 에이스 텐 페리토멘
개역개정,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9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 ㉥베드로 ㉦유대 사람을 가리킴
우리말성경,9 기둥같이 여김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청했습니다. 우리가 이방 사람에게로, 그들은 할례받은 사람에게로 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가톨릭성경,9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영어NIV,9 James, Peter and John, those reputed to be pillars, gave me and Barnabas the right hand of fellowship when they recognized the grace given to me. They agreed that we should go to the Gentiles, and they to the Jews.
영어NASB,9 and recognizing the grace that had been given to me, James and Cephas and John, who were reputed to be pillars, gave to me and Barnabas the right hand of fellowship, that we might go to the Gentiles, and they to the circumcised.
영어MSG,9 Recognizing that my calling had been given by God, James, Peter, and John--the pillars of the church--shook hands with me and Barnabas, assigning us to a ministry to the non-Jews, while they continued to be responsible for reaching out to the Jews.
영어NRSV,9 and when James and Cephas and John, who were acknowledged pillars, recognized the grace that had been given to me, they gave to Barnabas and me the right hand of fellowship, agreeing that we should go to the Gentiles and they to the circumcised.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γνοντες την χαριν την δοθεισαν μοι ιακωβος και κηφας και ιωαννης οι δοκουντες στυλοι ειναι δεξιας εδωκαν εμοι και βαρναβα κοινωνιας ινα ημεις εις τα εθνη αυτοι δε εις την περιτομην
라틴어Vulgate,9 et cum cognovissent gratiam quae data est mihi Iacobus et Cephas et Iohannes qui videbantur columnae esse dextras dederunt mihi et Barnabae societatis ut nos in gentes ipsi autem in circumcisionem
히브리어Modern,9 וכאשר ידעו יעקב וכיפא ויוחנן הנחשבים לעמודים את החסד הנתן לי נתנו לי ולבר נבא את יד ימינם ונאות כי נלך אנחנו לגוים והמה למולים׃
성 경: [갈2:9]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기둥같이 여기는 - '기둥'(*, 스튈로이)이라는 표현은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탈무드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이스라엘의 세 '기둥'(*,암무딤)이라 하였고 이스라엘의 계약 공동체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그들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Longenecker). 이러한 개념을 사용하여 바울은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을 '기둥'에 비유한 것 같다. 실제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가는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들이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을 향해 의도적으로 히브리적 개념을 도입해 논리를 펴나가면서 세 사도가 갖는 비중(比重)을 강조하였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지도자적 입장에 서 있었던 사실에 역점을 둔 것이다(행 15장). 먼저 야고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바울은 1:19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으나, 본절에서는 그냥 '야고보'라고 칭하고 있다. 이는 본장의 전체 맥락이 예루살렘 공의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이었다(1:19 주석 참조). 바울이 다른 두 사도보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을 먼저 기록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의장으로서의 야고보를 설명하기 위함인 것 같다(Boice). 그러나 다른 사도들의 이름이 뒤에 나왔다고 해서 예루살렘 교회 속에서 이들의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 바울은 모두 아홉 번에 결쳐 베드로를 언급하는데 일곱번은 '게바'라고 불렀으며(14절;1:18;고전 1:12;3:22;9:5;15:5) 두 번은 '베드로'로 칭하였다(7,8절). 특히 유대주의자들과 논의할 때 게바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베드로와 자신의 관계를 오해없이 설명하려 한 것 같다(Huxtable). 끝으로, 요한이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였다는 기록은 성경에서 본절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여러 곳에서 함께 등장하며 또한 사역하였다(행 3:1;4:13;8:14 등)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덱시아스 에도칸 코이노니아스'(*)는 '교제의 오른손을 주었다'라고 직역된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우정을 돈독하게 하고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였다(Longenecker). 본절에 언급된 다섯 사람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즉 야고보와 게바, 요한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파에 주력하였다. 이 두 그룹은 서로 독자적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사역에 협력하였다(행 15:25,26). 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는 것은 사적(私的)인 장소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는 의미보다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공식 석상에서 결의한 사항을 실행할 때에 함께 협력하기 위하여 공식적으로 손을 잡았다는것을 의미한다(Lenski).
모논 톤 프토콘 히나 므네모뉴오멘 호 카이 에스푸다사 아우토 투토 포이에사이
개역개정,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새번역,10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우리말성경,10 다만 그들은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는데 이것은 나 또한 힘써 행해 오던 일입니다.
가톨릭성경,10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영어NIV,10 All they asked was that we should continue to remember the poor, the very thing I was eager to do.
영어NASB,10 They only asked us to remember the poor-- the very thing I also was eager to do.
영어MSG,10 The only additional thing they asked was that we remember the poor, and I was already eager to do that.
영어NRSV,10 They asked only one thing, that we remember the poor, which was actually what I was eager to do.
헬라어신약Stephanos,10 μονον των πτωχων ινα μνημονευωμεν ο και εσπουδασα αυτο τουτο ποιησαι
라틴어Vulgate,10 tantum ut pauperum memores essemus quod etiam sollicitus fui hoc ipsum facere
히브리어Modern,10 רק שנזכר את האביונים אשר גם שקדתי לעשותה׃
성 경: [갈2:10]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바울의 사도됨의 인정]
가난한 자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에 '톤 프토콘'(*)은 '가난'을 뜻하는 일상 용어로서 돈이나 재산이나 생활 수단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는뜻으로 쓰인 단어이다. 신약에서 이 말은 '거지'에게도 사용되었으며 (눅 16:20) 주로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자들에게 사용되었다(마 19:21;눅 19:8;요 13:29). 당시 가난한 자들은 복음 전파의 주요 대상이었다(마 11:5).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셨으며 자신을 찾아온 부자들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마 19:21) 자신과 제자들이 함께 거하는 공동체 속에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준비된 공동궤를 가지고 있었다(요13:29). 사도행전에 와서는 '엔데에스'(*)라는 말이 등장하는데(행 4:34)이는 초대 교회 안의 '가난한 자', '궁핍한 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 나누어준 덕분에 살아가는 자들을 뜻한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 문제는 할례와 같이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행하여야 되는 임무로 인식되어 있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임무는 공의회의 결정에 의하여 수립된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요 13:29), 또한 초대 교회의 출발부터 교회가 감당했던 사명이다(행 24:17).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 바울은 믿음과 구제 문제를 믿음과 할례 문제처럼 대립시키지 않는다. 바울의 힘써 행하는 구제는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외식적인 것이 아니다. 본절의 구제가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바울의 생애 가운데 구제의사건은 여러 번 등장한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가 모은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으며(행 11:29,30) 여러 서신서에서 구제에 대하여 강조하였다(행 24;17;롬 15:25-27;고후 8:1-5). 또한 그는 구제에 대한 교훈을 남겼으며(롬12:13;엡4:28;딤전 6:18)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그 일을 위하여 정직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엡 4:28). 이러한 삶의 요구는 선행이 신앙의 살아 있는 증거요(약 2:14-17) 신앙 고백의 진실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요일3:17,18)
호테 데 엘덴 케파스 에이스 안티오케이안 카타 프로소폰 아우토 안테스텐 호티 카테그노스메노스 엔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개역개정,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새번역,11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를 나무랐습니다. / ㉧베드로
우리말성경,11 그러나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그에게 책망할 일이 있어서 얼굴을 마주대하고 그를 책망했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1 When Peter came to Antioch,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was clearly in the wrong.
영어NASB,11 But when Cephas came to Antioch,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stood condemned.
영어MSG,11 Later, when Peter came to Antioch, I had a face-to-face confrontation with him because he was clearly out of line.
영어NRSV,11 But when Cephas came to Antioch,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stood self-condemne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τε δε ηλθεν πετρος εις αντιοχειαν κατα προσωπον αυτω αντεστην οτι κατεγνωσμενος ην
라틴어Vulgate,11 cum autem venisset Cephas Antiochiam in faciem ei restiti quia reprehensibilis erat
히브리어Modern,11 וכאשר בא כיפא לאנטיוכיא הוכחתי אל פניו דרכו מפני שהיה בו אשם׃
성 경: [갈2:11]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게바를 책망함]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 여기서 베드로의 행위가 명백하게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더욱 뚜렷해진다. (1)'면책하였노라'의 헬라어 '안테스텐'(*)이 문자적으로 '대항하다', '저항하다' 혹은 '반발하다'라는 의미로 베드로의 행위가 '복음의 진리'를 훼손(毁損)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2) '안텐스텐'의 시제가 부정과거로서 바울이 베드로를 성공적으로 책망했으며 베드로는 바울의 책망에 대항하지 못하고 굴복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Lenski). (3) 더욱이 바울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아니고 공개적으로 면책하며 저지했다는 사실로 베드로의 잘못의 심각성이 더해간다(Hendriksen). 이와 같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와는 달리 안디옥에서는 베드로보다 높은 위치에 서서 성도들을 대하는 것같이 느껴지는데, 이는 베드로의 잘못이 너무도 명백하여 견책거리가 되기 때문이다(Robertson).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바울이, 신자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완전한 동등권을 항상 공격하며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좁고 치우쳐 있는 유대 중심적 신앙관에 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며(Huxtable) (2) 예루살렘 교회의 그 어떠한 권세자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에 대하여 책망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Cole).
프로 투 가르 엘데인 티나스 아포 야코부 메타 톤 에드논 쉬네스디엔 호테 데 엘돈 휘페스텔렌 카이 아포리젠 헤아우톤 포부메노스 투스 에크 페리토메스
개역개정,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새번역,12 그것은 ㉨게바가,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는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 / ㉨베드로 ㉩또는 '야고보가 보낸'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킴
우리말성경,12 게바는 야고보가 보낸 몇몇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자 그는 할례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해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가톨릭성경,12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영어NIV,12 Before certain men came from James, he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arrived, he began to draw back and separate himself from the Gentiles because he was afraid of those who belonged to the circumcision group.
영어NASB,12 For prior to the coming of certain men from James, he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came, he began to withdraw and hold himself aloof, fearing the party of the circumcision.
영어MSG,12 Here's the situation. Earlier, before certain persons had come from James, Peter regularly ate with the non-Jews. But when that conservative group came from Jerusalem, he cautiously pulled back and put as much distance as he could manage between himself and his non-Jewish friends. That's how fearful he was of the conservative Jewish clique that's been pushing the old system of circumcision.
영어NRSV,12 for until certain people came from James, he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ut after they came, he drew back and kept himself separate for fear of the circumcision faction.
헬라어신약Stephanos,12 προ του γαρ ελθειν τινας απο ιακωβου μετα των εθνων συνησθιεν οτε δε ηλθον υπεστελλεν και αφωριζεν εαυτον φοβουμενος τους εκ περιτομης
라틴어Vulgate,12 prius enim quam venirent quidam ab Iacobo cum gentibus edebat cum autem venissent subtrahebat et segregabat se timens eos qui ex circumcisione erant
히브리어Modern,12 כי לפני בא אנשים מאת יעקב היה אכל עם הגוים יחדו וכבאם היה מתרחק ופורש מהם מיראתו את בני המילה׃
성 경: [갈2:12]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게바를 책망함]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 본 구절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던 식탁 교제나 성찬을 가리키는 것같다. 이것이 정식 예배였는지 아니면 비공식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임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본절에서 초대교회 당시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방 출신 그리스도인과의 식사를 꺼린 사실이 나와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유대인들은 레 11장에 있는 정함과 부정함에 관한 규례를 철저히 지켜왔고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준수하려 하였다(민 25장, 31장;단 1:8;토비트 1:1-12;마카베오상 1:62).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도 그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이방인들이 먹는 음식 중에는 레 11장의 정결(精潔) 규례에 위배되는것이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따라서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려 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들을 부연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한 규정들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들은 그 종류가 대단히 많고 다양했는데 초대교회 당시에는 하나님의 율법 못지않게 존중된 것으로 보인다. 그 실례로 장로들의 유전에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위생상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고 이방 사람들과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손으로 음식을 먹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마 15;1-20;막 7:1-23). 위와같은 이유로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는 이방인에 대한 배타심이 굳어져왔다.이러한 것은 사마리아인도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사실이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할 때 그 여인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대답한다(요 4:7-9). 따라서 유대인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뿐 아니라 대단히 죄악된 행동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Hendriksen).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약의 율법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며 삶이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늘어나는 이방 그리스도인에 대해 몇가지 제한 사항을 제시하고 다른 어떠한 율법의 행위로도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행 15:14-21).
저희가 오매...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 베드로가 이방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오자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행동의 동기는 예루살렘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Hendriksen).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랑이나 자기 확신에 의해 나온 행동이 아니라 거짓과 위선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베드로의 외식적인 행동를 책망했다.
카이 쉬뉘페크리데산 아우토 카이 호이 로이포이 유다이오이 호스테 카이 바르나바스 쉬나페크데 아우톤 테 휘포크리세이
개역개정,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새번역,13 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하였고, 마침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습니다.
우리말성경,13 그러자 다른 유대 사람들도 게바와 함께 위선을 행했고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휩쓸렸습니다.
가톨릭성경,13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영어NIV,13 The other Jews joined him in his hypocrisy, so that by their hypocrisy even Barnabas was led astray.
영어NASB,13 And the rest of the Jews joined him in hypocrisy, with the result that even Barnabas was carried away by their hypocrisy.
영어MSG,13 Unfortunately, the rest of the Jews in the Antioch church joined in that hypocrisy so that even Barnabas was swept along in the charade.
영어NRSV,13 And the other Jews joined him in this hypocrisy, so that even Barnabas was led astray by their hypocrisy.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συνυπεκριθησαν αυτω και οι λοιποι ιουδαιοι ωστε και βαρναβας συναπηχθη αυτων τη υποκρισει
라틴어Vulgate,13 et simulationi eius consenserunt ceteri Iudaei ita ut et Barnabas duceretur ab eis in illa simulatione
히브리어Modern,13 ויכחשו עמו גם שאר היהודים עד כי בר נבא גם הוא נדח אחרי כחשם׃
성 경: [갈2:13]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게바를 책망함]
남은 유대인들도...외식하므로 - 주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요 공적인 위치에 있었던 베드로가 한 외식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복음의 자유가 첨예(尖銳)하게 대립되고 있는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베드로의 이러한 실수는 단순히 개인적인 외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1) 다른 사람들 심지어 바나바같은 지도자까지도 외식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근거가 되며 (2) 예루살렘 공의회(A.D.49)의 율법 무용론에 대한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것이고 (3) 결과적으로는 율법주의에 굴복한다는 위미를 지닌다. 여기서 우리는 공적인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행동의 중요성과 함께 한 사람의 외식적인 행동은 중요성과 함께 한 사람의 외식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막 7:1-23).
알 호테 에이돈 호티 우크 오르도포두신 프로스 텐 알레데이안 투 유앙겔리우 에이폰 토 케파 엠프로스덴 판톤 에이 쉬 유다이오스 휘파르콘 에드니코스 카이 우키 유다이코스 제스 포스 타 에드네 아낭카제이스 유다이제인
개역개정,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새번역,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 ㉫베드로 ㉬해석자들에 따라, 인용을 21절까지 확대하기도 함
우리말성경,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대로 바르게 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으로서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방 사람에게 유대 사람처럼 살라고 강요합니까?”
가톨릭성경,14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영어NIV,14 When I saw that they were not acting in line with the truth of the gospel, I said to Peter in front of them all, "You are a Jew, yet you live like a Gentile and not like a Jew. How is it, then, that you force Gentiles to follow Jewish customs?
영어NASB,14 But when I saw that they were not straightforward about the truth of the gospel, I said to Cephas in the presence of all, "If you, being a Jew, live like the Gentiles and not like the Jews, how is it that you compel the Gentiles to live like Jews?
영어MSG,14 But when I saw that they were not maintaining a steady, straight course according to the Message, I spoke up to Peter in front of them all: "If you, a Jew, live like a non-Jew when you're not being observed by the watchdogs from Jerusalem, what right do you have to require non-Jews to conform to Jewish customs just to make a favorable impression on your old Jerusalem cronies?"
영어NRSV,14 But when I saw that they were not acting consistently with the truth of the gospel, I said to Cephas before them all, "If you, though a Jew, live like a Gentile and not like a Jew, how can you compel the Gentiles to live like Jew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αλλ οτε ειδον οτι ουκ ορθοποδουσιν προς την αληθειαν του ευαγγελιου ειπον τω πετρω εμπροσθεν παντων ει συ ιουδαιος υπαρχων εθνικως ζης και ουκ ιουδαικως τι τα εθνη αναγκαζεις ιουδαιζειν
라틴어Vulgate,14 sed cum vidissem quod non recte ambularent ad veritatem evangelii dixi Cephae coram omnibus si tu cum Iudaeus sis gentiliter et non iudaice vivis quomodo gentes cogis iudaizare
히브리어Modern,14 אכן בראותו את אשר לא ישרו לכת כאמתה של הבשורה אמרתי אל כיפא בפני כל אם אתה היהודי תתנהג כנכרי ולא כיהודי למה תכריח את הגוים להתנהג כיהודים׃
성 경: [갈2:14]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게바를 책망함]
모든 자 앞에서 - 바울은 베드로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망을 했다. 이는 (1) 베드로뿐만 아니라 여러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잘못을 했으며(2) 공적인 잘못은 사적으로 고칠 수 없기 때문이고(Lenski) (3) 그러한 실수를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Hendriksen).
헤메이스 퓌세이 유다이오이 카이 우크 엨스 에드논 하마르톨로이
개역개정,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새번역,15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말성경,15 우리는 본래 유대 사람이요, 이방 죄인들이 아닙니다.
가톨릭성경,15 우리는 본디 유다인으로, 죄인들인 이민족이 아닙니다.
영어NIV,15 "We who are Jews by birth and not 'Gentile sinners'
영어NASB,15 "We are Jews by nature, and not sinners from among the Gentiles;
영어MSG,15 We Jews know that we have no advantage of birth over "non-Jewish sinners."
영어NRSV,15 We ourselves are Jews by birth and not Gentile sinners;
헬라어신약Stephanos,15 ημεις φυσει ιουδαιοι και ουκ εξ εθνων αμαρτωλοι
라틴어Vulgate,15 nos natura Iudaei et non ex gentibus peccatores
히브리어Modern,15 הן מזרע היהודים אנחנו ולא חטאים מן הגוים׃
성 경: [갈2:15]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 본절에서 바울이 '본래 유대인'임을 밝히는 것은 그도 태어나면서부터 유대인의 종교적 특권을 지녔음을 보여주어 다른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반감을 줄이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Cole).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 이방인들에게 '죄인'(*, 하마르톨로이)이라고 말하는 것은 윤리적인 판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유대인의 독선에서 나오는 이방인에 대한 통상적인 언급이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었지만 본문에서 바울은 그 특권을 자랑하거나 또는 이방인들을 조소하기 위해 '죄인'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비록 바울이 유대교 내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이방 죄인'으로 표현하였지만 이 말 속에는 매우 반어적(反語的)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당시 유대인들에 의해 죄인으로 간주된 이방인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사실은 스스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이방인들을 하찮게 여기며 조금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독선적이고 교만한 태도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이다(Cole).
에이도테스 데 호티 우 디카이우타이 안드로포스 엨스 에르곤 노무 에안 메 디아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 카이 헤메이스 에이스 크리스톤 예순 에피스튜사멘 히나 디카이오도멘 에크 피스테오스 크리스투 카이 우크 엨스 에르곤 노무 호티 엨스 에르곤 노무 우 디카이오데세타이 파사 사릌스
개역개정,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새번역,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또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것' 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다른 곳에서도)
우리말성경,16 그러나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을 알기에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6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6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영어NASB,16 nevertheless knowing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even we have believed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since by the works of the Law shall no flesh be justified.
영어MSG,16 We know very well that we are not set right with God by rule-keeping but only through personal faith in Jesus Christ. How do we know? We tried it--and we had the best system of rules the world has ever seen! Convinced that no human being can please God by self-improvement, we believed in Jesus as the Messiah so that we might be set right before God by trusting in the Messiah, not by trying to be good.
영어NRSV,16 yet we know that a person is justifie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but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And we have come to believe in Christ Jesus, so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doing the works of the law, because no one will be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16 ειδοτες οτι ου δικαιουται ανθρωπος εξ εργων νομου εαν μη δια πιστεως ιησου χριστου και ημεις εις χριστον ιησουν επιστευσαμεν ινα δικαιωθωμεν εκ πιστεως χριστου και ουκ εξ εργων νομου διοτι ου δικαιωθησεται εξ εργων νομου πασα σαρξ
라틴어Vulgate,16 scientes autem quod non iustificatur homo ex operibus legis nisi per fidem Iesu Christi et nos in Christo Iesu credidimus ut iustificemur ex fide Christi et non ex operibus legis propter quod ex operibus legis non iustificabitur omnis caro
히브리어Modern,16 ומדעתנו כי לא יצדק אדם מתוך מעשי התורה כי אם באמונת ישוע המשיח גם אנחנו האמנו במשיח ישוע למען נצדק מאמונת המשיח ולא ממעשי התורה כי ממעשי התורה לא יצדק כל בשר׃
성 경: [갈2:16]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 본절에는 법정 용어인 '디카이오스'(*, '의로운')에서 파생된 말이 세 번 반복되고 있다. '의'는 하나님의 속성에 속하는 것이므로 그 근원은 인간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다. 본절에서도 이 용어가 수동태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능동적인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의롭다고 선언한다'는 뜻이지 '의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의로움에 이를 수가 없다(롬 3:20). 그러나 의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은 인간의 윤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이며 신적 표준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 본서에서 처음 나타나는 '율법'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모스'(*)는 바울 서신 중 특히 로마서와 본서에 많이 등장하는데 '의'(*, 디카이오쉬네), '행위'(*, 에르곤) 등과 함께 복음의 핵심을 설명할 때마다 '믿음'(*, 파스티스)과 관련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관사없이 사용된 '노모스'는 모세의 율법을 지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선한 행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자 하는 인간들이 '자기 의'를 위해 구축한 규범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유대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거짓된 규범들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규범으로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 인간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게 되는 수단일뿐 절대적인 자격이나 요건이 되지 못한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을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이다(롬 5:18,19). 죄악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만이 인간들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할 수 있으며 이를 신뢰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며 이러한 믿음은 생명력이 있어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역동적(力動的)인 삶을 살도록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주의자들은 그 믿음에다가 할례와 같은 율법적이요 외적인 조건을 더 하려고 하였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본절은 시 143:2(LXX, 142:2)의 인용이며 아울러 롬 3:20 내용과 병행을 이룬다. 아래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편의 '파스존'(*, '모든 생명') 대신에 로마서에서는 '파사 사륵스'(*, '모든 육체')를 사용하였고, 로마서와 본절에서는 시편에 없는 '율법의 행위'를 부가(附加)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결단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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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143:2 +------------------------------------------------------
| | 우 디카이오데세타이 에노피운 수 파스 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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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생명이 당신 앞에 의롭다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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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3:20 | 엑스 에르곤 노무 우 디카이오데세타이 파사 사륵스 에노피운 |
| | 아우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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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법의 행위로 모든 육체가 그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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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절 | 우 디카이우타이 안드로포스 엑스 에르곤 노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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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부터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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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데 제툰테스 디카이오데나이 엔 크리스토 휴레데멘 카이 아우토이 하마르톨로이 아라 크리스토스 하마르티아스 디아코노스 메 게노이토
개역개정,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새번역,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하심을 받으려고 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말성경,17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으려 하다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시는 분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17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고 애쓰는 우리 자신도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결국 그리스도께서 죄의 종이시라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NIV,17 "If, while we seek to be justified in Christ, it becomes evident that we ourselves are sinners, does that mean that Christ promotes sin? Absolutely not!
영어NASB,17 "But if, while seeking to be justified in Christ, we ourselves have also been found sinners, is Christ then a minister of sin? May it never be!
영어MSG,17 Have some of you noticed that we are not yet perfect? (No great surprise, right?) And are you ready to make the accusation that since people like me, who go through Christ in order to get things right with God, aren't perfectly virtuous, Christ must therefore be an accessory to sin? The accusation is frivolous.
영어NRSV,17 But if, in our effort to be justified in Christ, we ourselves have been found to be sinners, is Christ then a servant of sin? Certainly not!
헬라어신약Stephanos,17 ει δε ζητουντες δικαιωθηναι εν χριστω ευρεθημεν και αυτοι αμαρτωλοι αρα χριστος αμαρτιας διακονος μη γενοιτο
라틴어Vulgate,17 quod si quaerentes iustificari in Christo inventi sumus et ipsi peccatores numquid Christus peccati minister est absit
히브리어Modern,17 ואם בבקשנו להצדק במשיח נמצא גם אנחנו חטאים הנה המשיח משרת החטא חלילה׃
성 경: [갈2:17]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그리스도 안에서 - 이 말은 바울 신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용어로서 그리스도와 성도 간에 누리는 친밀한 개인적 교제를 시사한다. 그가 이방인에 대한 복음 전파 사역을 강조하는 것도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며, 예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전파하는 것과 미래 세계에 대한 거룩한 소망을 가지는 것도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유일한 신앙의 대상이며 동시에 전부라고 고백하고 있다. 특히 바울 신학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아담 안에서'(롬 5:12-19)라고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아담은 죄와 사망의 옛사람을 대표하지만, 그리스도는 자유와 생명의 새 사람을 대표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표현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실현하신 그리스도와 실존적으로 연합하여(롬 8:39;14:7;빌 2:1) 구원받은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죄인으로 나타나면 - 본절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1) 바울이 유대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이 말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Hendriksen). 다시 말해서 유대주의자들이 의롭게 되기 위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율법을 폐기하는 죄인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할 경우에 대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회심을 독려하는 문구로 해석한다(Cole). 이 견해에 따르면, 유대주의자들이 예수를 믿고 율법을 폐기했다면 그들은 스스로 이방인과 같이 율법을 도외시하는 죄인이 된 것이고 그것은 모세 율법보다 저급한 수단의 삶으로 여겨질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그리스도마저 '죄를 위한 봉사자'(*, 하마르티아스 디아코노스)로 전락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 (2) 바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는 견해이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기속에 죄악의 본성이 남아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죄악된 옛 사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롬 7:24)라고 고백한 바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오히려 유대주의자들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한다. 이는 유대주의자들이 가진 의식법과 율법주의적 관점에서는 언제나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역설이다(R.E. Howard). 그가 유대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시인한다고 해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정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8:1). 본절의 해석은 자신이 계속해서 죄인으로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전체의 맥락과 연결시킬 때 후자가 보다 타당할 것 같다.
에이 가르 하 카텔뤼사 타우타 팔린 오이코도모 파라바텐 에마우톤 쉬니스타노
개역개정,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새번역,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8 만일 내가 허물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려 한다면 나 스스로 율법을 어기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운다면 나 자신이 범법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영어NIV,18 If I rebuild what I destroyed, I prove that I am a lawbreaker.
영어NASB,18 "For if I rebuild what I have once destroyed, I prove myself to be a transgressor.
영어MSG,18 If I was "trying to be good," I would be rebuilding the same old barn that I tore down. I would be acting as a charlatan.
영어NRSV,18 But if I build up again the very things that I once tore down, then I demonstrate that I am a transgressor.
헬라어신약Stephanos,18 ει γαρ α κατελυσα ταυτα παλιν οικοδομω παραβατην εμαυτον συνιστημι
라틴어Vulgate,18 si enim quae destruxi haec iterum aedifico praevaricatorem me constituo
히브리어Modern,18 כי אם אשוב ואבנה את מה שסתרתי אני עשה את עצמי פשע׃
성 경: [갈2:18]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며 - 본문은 다분히 베드로가 유대주의자들을 두려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로부터 떠나 다시 유대인의 옛 습관으로 돌아간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다(2:11). 바울은 다메섹의 체험(행 9:1-7) 이후에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아니한 일관된 삶을 살았음을 고백한다. 또한 율법의 공로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의도가 결단코 없음을 밝힌다.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 '범법한 자'의 헬라어 '파라바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가 정의되는 '하마르톨로스'(*, '죄인')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파라바텐'은 문자적으로 '배신자','이단자'를 뜻하며 본절자서는 바울 자신이 다시 율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背信) 행위가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에고 가르 디아 노무 노모 아페다논 히나 데오 제소 크리스토 쉬네스타우로마이
개역개정,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새번역,19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9 나는 율법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 대해 살고자 함입니다.
가톨릭성경,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영어NIV,19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 so that I might live for God.
영어NASB,19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 that I might live to God.
영어MSG,19 What actually took place is this: I tried keeping rules and working my head off to please God, and it didn't work. So I quit being a "law man" so that I could be God's man.
영어NRSV,19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 so that I might live to God.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헬라어신약Stephanos,19 εγω γαρ δια νομου νομω απεθανον ινα θεω ζησω
라틴어Vulgate,19 ego enim per legem legi mortuus sum ut Deo vivam Christo confixus sum cruci
히브리어Modern,19 כי מתי אני לתורה על ידי התורה למען אחיה לאלהים׃
성 경: [갈2:19]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 바울은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함으로 자신에게 있었던 실제적인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을 향하여 '죽는다'는 표현은 모든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의미하며 더이상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었나니'의 헬라어 '아폐다논'(*)은 다음 절에 나오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쉬네스타우로마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들은 둘 다 단회적인 것으로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다시 십자가에 못박힐 수 없는 옛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는 것은 '율법으로부터 벗어나 살아났다'는 표현이다. 로마서에서는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표현했는데(롬 7:4), 이 두 표현은 모두 단순히 사변적인 표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고백한 말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죄악으로부터 밀려오는 좌절감과 실패를 극복할 수가 없다. 오히려 율법은 인간 속에 있는 죄를 더욱 죄되게 만든다. 율법은 단지 죄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믿음과 새 생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기능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조 데 우케티 에고 제 데 엔 에모이 크리스토스 호 데 뉜 조 엔 사르키 엔 피스테이 조 테 투 휘우 투 데우 투 아가페산토스 메 카이 파라돈토스 헤아우톤 휘페르 에무
개역개정,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새번역,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영어NIV,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영어NASB,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lives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delivered Himself up for me.
영어MSG,20 Christ's life showed me how, and enabled me to do it. I identified myself completely with him. Indeed,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My ego is no longer central. It is no longer important that I appear righteous before you or have your good opinion, and I am no longer driven to impress God. Christ lives in me. The life you see me living is not "mine," but it is lived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영어NRSV,20 and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it is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헬라어신약Stephanos,20 χριστω συνεσταυρωμαι ζω δε ουκετι εγω ζη δε εν εμοι χριστος ο δε νυν ζω εν σαρκι εν πιστει ζω τη του υιου του θεου του αγαπησαντος με και παραδοντος εαυτον υπερ εμου
라틴어Vulgate,20 vivo autem iam non ego vivit vero in me Christus quod autem nunc vivo in carne in fide vivo Filii Dei qui dilexit me et tradidit se ipsum pro me
히브리어Modern,20 עם המשיח נצלבתי ואין עוד אנכי החי כי אם המשיח הוא חי בקרבי ואשר אני חי עתה בבשר אחיה באמונת בן אלהים אשר אהבני ויתן את נפשו בעדי׃
성 경: [갈2:20]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 본 구절은 본서의 여러 곳에 거듭 언급되는 내용으로(1:4;3:1,13;6:12,14)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초대 교회의 가르침의 초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본절은 예수님을 핍박했던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변화와 율법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신학적인 논증을 나타낸다. 실로 그토록 교만하고 자존심 강한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유대교에 철저했던 그에게 있어 종래의 모든 삶과 사랑에 대한 부정이요 새로운 삶을 향해 전환(轉換)을 이루는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이 변화된 삶은 그리스도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지고 고난 가운데서도 자기를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이후에 그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궁극적으로 고통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과 승리의 삶이었다(W.G.Coltman). 한편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스타우로마이'(*)는 성도가 그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에 영적으로 동참하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본서에 처음 등장하는 '십자가'는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는 의미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 함이며(롬 8:4), 또한 실존적으로 구약의 모든 율법적 요구들을 완성한 역사적 사건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이제까지 자기가 메고 있던 율법의 요구들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이 짧은 구절 안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모두 언급되고 있다. 바울은 십자가 위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시고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롬 6:4). 그리스도와 바울의 완전한 연합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는 것이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옛 사람의 자기 교만과 바리새인의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잠시 동안 자신에게 패배감과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심으로 인하여 얻은 자유와 평화는 그 고통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롬 8:18).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 본절에는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1) '나' 대신에 '그리스도',(2) '율법' 대신에 '믿음',(3) 과거의 '옛 사람' 대신에 현재의 '새 사람'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울로 하여금 모든 변화를 경험하게 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율법 아래서 종노릇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의와 사랑의 종이 되었으며(롬 6:19), 비록 제한된 육체 가운데 살지만 더이상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으며, 성령을 좇는 삶을 살게 되었다(롬 8:4).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 안에서'사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고 애썼던 삶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수께서는 '내 말이 너희 안에'(요 15:7)라고 말씀하셨지만, 바울은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라고 말한다. 이는 주께서 우리 안에 계실때에는 말씀으로 존재하시며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믿음으로 그를 따른다는 의미이다.
우크 아데토 텐 카린 투 데우 에이 가르 디아 노무 디카이오쉬네 아라 크리스토스 도레안 아페다넨
개역개정,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새번역,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우리말성경,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만일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게 죽으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영어NIV,21 I do not set aside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could be gained through the law, Christ died for nothing!"
영어NASB,21 "I do not nullify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comes through the Law, then Christ died needlessly."
영어MSG,21 I am not going to go back on that. Is it not clear to you that to go back to that old rule-keeping, peer-pleasing religion would be an abandonment of everything personal and free in my relationship with God? I refuse to do that, to repudiate God's grace. If a living relationship with God could come by rule-keeping, then Christ died unnecessarily.
영어NRSV,21 I do not nullify the grace of God; for if justification comes through the law, then Christ died for nothing.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υκ αθετω την χαριν του θεου ει γαρ δια νομου δικαιοσυνη αρα χριστος δωρεαν απεθανεν
라틴어Vulgate,21 non abicio gratiam Dei si enim per legem iustitia ergo Christus gratis mortuus est
히브리어Modern,21 לא אמאס את חסד האלהים כי אלו תהיה על ידי התורה צדקה הנה חנם מת המשיח׃
성 경: [갈2:21]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하나님의 은혜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바울 자신이 그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게 된 신비적 연합의 사건이 '하나님의 은혜'로 묘사되고 있다. '은혜'의 헬라어 '카린'(*)은 '하나님이 주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과 우리로 아들을 믿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 '헛되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레안'(*)은 '연고없이','이유나 목적이 없이','불필요하게'등의 의미를 지닌다.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이 다시 율법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율법에 대한 애착심과 관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정적인 잘못이다.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옛 생활에 대한 단순한 향수(鄕愁)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자 하는 범죄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신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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